서울대 ‘불법합성물’ 가해자, 왜 2년간 못잡았나

박현정 기자 2024. 6. 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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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마다 심각성 인식·역량 차이에
불법촬영-유포, 사건 담당부서 달라
지난 2020년 8월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리셋’(ReSET)과 ‘교대역 엔(n)번방 규탄 지하철 광고팀’이 진행한 ‘릴레이 포스트잇 주간’ 당시 서울 교대역에 붙은 스티커와 포스트잇. 리셋 제공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서울대 불법합성물 성범죄 사건은 2021년 7월부터 2년 가까이 모두 네 군데 경찰서가 수사를 했지만 피의자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재수사 지시 4개월여 만인 올해 4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산하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은 피의자를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경찰 의지에 따라 수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경찰마다 불법합성물에 대한 심각성 인식 정도나 대응 역량 차가 크다는 설명도 나온다. 이런 현실은 범죄피해자 구제 실패를 야기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서울대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해를 처음 신고한 루마(가명)씨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해 말 서울경찰청이 재수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곤 “반가움보단 황당함이 컸다”고 말했다. 이미 2022년 7월 서울경찰청에도 신고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2018년부터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성폭력 사건을 전문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전국 시·도 경찰청에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꾸렸다. 피해자들이 굳이 서울경찰청을 찾은 이유다. 그러나 사건은 서울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이 아닌 서울관악경찰서사이버수사팀에 배당됐다. 당시 경찰은 2023년 1월 피의자로 지목된 인물에 대한 불송치 결정 뒤 수사를 접는다. 이런 사실이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사건은 서울경찰청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피해 신고를 받은 서울경찰청이 곧바로 수사를 할 순 없었을까? 오규식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2대장은 “예전엔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사건을 배당하고 그 가운데 중요 사건을 시·도 경찰청이 맡았다”며 “지금은 시스템이 바뀌어 모든 사이버성폭력 사건을 시·도 경찰청에서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올해부터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전국 경찰서에 기존 사이버수사팀과 경제팀을 합친 ‘통합수사팀’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사이버성폭력 사건은 경찰서 통합수사팀에서 피해자 진술 청취와 범죄 피해물 삭제·차단 요청 등 초동조치만 하고 곧바로 시·도 경찰청에 넘기도록 했다.

그러나 신고 즉시 빠른 대응이 필요한 범죄 피해물 유포·협박 등의 사건이 경찰서 여러 부서를 돌다 뒤늦게 시·도 경찰청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피해자를 처음 만나는 경찰이 ‘범인 잡기 어려운데도 신고 하겠느냐’는 식으로 대응하면 피해자가 수사 요청을 단념할 우려도 여전하다. 경찰 ㄱ씨는 “경찰 안에서도 (디지털성범죄) 대응 역량 편차가 크다”며 “피해자로선 열정적인 수사관을 만나면 운이 좋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 고통만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수사팀 제도 시행으로 각 시·도 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이 맡는 사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을 활용한 디지털성범죄 수사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등이 불가능하므로 상당한 ‘품’이 든다. 서울대 불법합성물 성범죄 사건의 경우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가 가해자와 연락을 이어온 2년10개월의 시간이 피의자 검거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 충분한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다.

경찰청이 지난 2022년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 인력은 2022년 6월 기준 109명으로 ‘엔(n)번방’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2019년에 견줘 10명 늘었다. 현재 인력 규모는 2022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정책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개인 인격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범죄를 포괄한다. 그러나 경찰 수사에선 범죄 유형에 따라 담당 부서가 달라진다. 불법합성물·불법촬영물 온라인 유포와 아동성착취물 범죄 등은 사이버수사, 오프라인 불법촬영이나 온라인그루밍(길들이기) 등은 여성청소년 부서 소관이다. 경찰 안팎에선 이렇게 분절된 체계가 교제폭력과 스토킹, 불법촬영·불법합성물 제작 및 유포, 협박 등 여러 유형이 합쳐진 여성 대상 범죄 수사나 피해자 보호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ㄴ씨는 “(텔레그램이 활용된) 어려운 사건 해결을 위해선 정보를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하지만 부서 간 정보 공유가 어렵다”며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청소년이므로 사이버성폭력과 여성청소년 쪽을 합쳐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기 보단, 여성 피해자가 많은 범죄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바탕으로 사건 해결의 중요성을 우선 공유한 뒤 수사력을 얼마나 투입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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