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양조위, 신세계 이정재처럼… 경찰 '언더커버' 수사 확대 시도
"마약, 도박, 사기 등에도 적용해야"
영국, 독일에서는 일반적 수사기법
'서울대판 N번방'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만 국한된 경찰의 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마약·사이버도박·다중사기 등의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조직화하는 실태를 고려해, 디지털 성범죄 이외 범죄에까지 위장수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력 비대화나 기본권 침해 등 부작용 우려가 만만치 않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암암리에 이뤄졌던 위장수사를 '법의 테두리'에 포함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위장수사 확대될까?
3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가능한 위장수사 범위를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서 성인 피해자 범죄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위장수사는 2021년 9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이 개정되면서 명문화됐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위장수사로 검거한 인원이 1,028명에 달할 정도로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
성과가 있으니 다른 범죄로까지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현행법상 위장수사는 ①경찰임을 밝히지 않는 '신분 비공개 수사'와 ②문서, 전자기록 등을 활용해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는 '신분 위장수사'로 나뉜다. 신분 비공개는 경찰임을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고, 신분 위장은 가짜 신분증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신분을 속인다는 차이가 있다.
이중 신분을 밝히지 않는 수사의 경우, 수사 실무상 마약·사기·도박 등 다른 조직 범죄를 수사할 때도 종종 활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범죄 조직들이 갈수록 경찰 단속에 조심스럽게 반응하면서 '적극적 신분위장' 필요성도 대두된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사기 범죄를 주로 수사해 온 한 수사관은 "지금은 해봤자 리딩방에 몰래 들어가 훔쳐보는 수준에 불과해 조직 규모를 파악하고 검거하기가 어렵다"며 "신분을 새로 만들어 잠입할 권한이 생기면 당연히 수사 깊이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적극적으로 비밀수사관(언더커버)을 활용하는 나라도 꽤 있다. 영국에서는 '수사권한규제법' 등에 위장수사 관련 내용들을 법적으로 규정하는데, 신분 위장수사가 가능한 범죄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공공분야 범죄 수사에 신분위장이 활용되고, 법무부·내무부·국세청·보건복지부까지 절차만 거치면 신분 위장수사를 시도할 수 있다. 독일 역시 형사소송법에 신분위장수사에 대한 규정들을 마련해, 그 허용 범위를 △마약 △불법무기 △위조범 △조직범죄 등으로 넓게 잡고 있다.
사생활침해, 피곤해질라
하지만 국내에서는 매번 '기본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관련 논의들이 무산됐다. 2022년 8월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사기범죄 수사에서 신분위장을 가능토록 하는 내용의 사기방지기본법을 발의했지만,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사생활·기본권 침해 우려가 나와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 지난해 5월에는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마약류 범죄에서 신분위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보건복지위원회가 "국민 신뢰를 저해하고 수사의 신의칙 위반할 수 있어 견해의 대립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해당 법안은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경찰 내에서도 위장수사를 꺼리는 분위기는 있다. 위장수사를 위한 빡빡한 절차가 오히려 수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아청법만 해도 신분 비공개 수사를 위해선 사전에 상급 경찰관서 수사부서장의 승인을 얻어야 하고, 신분위장 수사를 하려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요 조직 범죄는 수사의 신속성이 중요한데, 절차를 하나하나 밟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마약수사를 담당하는 한 수사관은 "현장에선 이미 신분 비공개 수사를 하고 있는데 굳이 법을 개정해 불필요한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며 "번거로울 것 같다는 의견도 분명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위장수사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장응혁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국내에서 벌어지는 범죄가 대부분 조직 범죄라서, 위장수사가 아니고는 적발하기 쉽지 않다"며 "사후 승인제를 도입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면 현장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 역시 "지금까지 명문화되지 않아 판례로만 그 위법성을 가려야해 현장에서 위장수사에 대한 혼동이 컸다"며 "오히려 제도 안에서 경찰 권력을 감시할 수 있으니 긍정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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