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고물가-불법이민에 ‘극우 바람’ 분다… 오늘부터 선거
경제난에 지친 청년들 극우 지지
양대 극우정당 의석 2당 맞먹을 듯
친기업정책 추진땐 韓기업들 수혜
유럽연합(EU)이 6∼9일 나흘간 유럽의회 선거를 실시한다. 차기 의회 의원 720명을 선출하는 것으로, 27개 회원국 유권자 총 3억7000만 명이 직접 한 표씩 행사하는 ‘대규모 선거 이벤트’다.
극우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에서 재집권에 도전하는 가운데 미국과 함께 서방의 양축을 이루고 있는 EU에서도 우파 정당이 득세할지 관심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물가, 불법 이민자 급증으로 확산된 반(反)이민 정서 등으로 주요국 청년들이 기존 정당에서 돌아서며 극우 정당의 약진이 예상된다.
● 제2당 노리는 佛-伊 극우 정당
회원국들은 자국 선거법에 따라 선거를 치르며, 배정받은 의석수 내에서 득표를 많이 한 후보들을 의원으로 선출한다. 6일 네덜란드가 투표를 시작하고 9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회원국들이 투표를 진행한다. 1차적인 윤곽은 9일 늦은 밤 드러날 예정이다.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4일 현재 제1당인 중도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이 172석으로 1위를, 제2당인 중도좌파 성향 ‘사회민주진보동맹(S&D)’이 143석으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이어 극우 성향인 ‘유럽 보수와 개혁(ECR)’과 ‘정체성과 민주주의(ID)’가 각각 75석, 68석으로 그 뒤를 쫓고 있다. 두 극우 정당의 예상 의석수를 합하면 제2당에 맞먹는다.
ECR은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 지도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이탈리아형제당), ID는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의원이 속한 국민연합(RN)이 이끈다. 멜로니 총리는 르펜 의원과 EU 집행위원장 연임을 꾀하는 EPP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위원장으로부터도 연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멜로니 총리가 그간 유럽 극우와 주류 보수 간 가교 역할을 하며 EU 집행위원장 선출권을 가진 의회 구성에서도 입지가 크게 부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3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4세 프랑스 청년 중 36%가 “국민연합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25∼34세에서는 39%로 더 높았다. 네덜란드에선 18∼24세 유권자의 31%가 지난해 말 총선에서 1당에 오른 극우 자유당(PVV)을 지지한다고 했다. 스티븐 포티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교수는 “페미니즘에 무력감을 느낀 남성들이 극우를 지지하는 사례가 많다”고 진단했다.
유럽의회는 최근 확정된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규제법((AI Act)과 같이 27개 회원국에 적용되는 법을 최종 결정한다. 법안은 EU 집행위원회만 발의할 수 있지만 유럽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빛을 보지 못한다. 유럽의 핵심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포함한 EU 예산안을 승인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 같은 기능을 하는 유럽의회의 우경화는 한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 브뤼셀 지부는 4일 보고서에서 차기 의회가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면 한국 기업들이 긍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성향 정당이 득세하면 현재의 친환경 정책 ‘그린딜(green deal)’의 추진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전기차 기업들의 환경 규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또한 EU가 중국의 과잉 생산 및 헐값 수출 등에 본격 대응하면 중국의 수출 경쟁국인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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