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봉송 이벤트’는 히틀러가 처음 기획
파리 올림픽을 밝힐 성화(聖火)는 개막 50일을 앞둔 6일, 프랑스 북서부 도시 반에 도착한다. 7일엔 항구도시 브레스트를 떠나 남미 기아나와 태평양 뉴칼레도니아, 인도양 레위니옹, 카리브해 과들루프 등 프랑스령 해외 자치주를 돌고 18일 니스를 통해 본토로 돌아온다.
이 성화는 지난 4월 16일 고대 올림픽 발상지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불이 붙여졌다. 관례에 따라 그리스 올림픽위원회 선택을 받은 여배우 메리 미나가 대제사장을 맡아 성화봉에 불을 붙였다. 이날 날씨가 흐려 오목거울로 태양 빛을 모아 불꽃을 피우는 대신 준비한 불씨로 채화했다. 4월 26일 그리스를 떠나 벨렘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5월 8일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벨렘호는 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1896년 탄생한 역사적 범선. 성화는 1만여 명 손에 들려 프랑스 64개 지역을 돌고 개막식이 열릴 7월 26일 파리 올림픽 개회식장 성화대에 점화된다.
파리 올림픽 성화봉은 길이 70㎝로 평등과 물, 평화라는 세 가지 테마로 디자인했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위아래가 대칭을 이룬 모양이 평등을 뜻하고, 성화봉 아래쪽 무늬는 파리 센강 물결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은 평화에 대한 열망을 상징한다고 한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경량 철강을 재활용, 성화봉을 제작했다.
올림픽 성화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정을 지키는 화로(火爐)의 여신 헤스티아 제단에 불을 밝히는 신성한 행위에서 유래했다. 성화를 잘 지켜야 국가 안녕과 질서가 잘 유지된다고 믿었다. 올림픽 초기엔 성화 점화 의식이 없었고, 9회인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야 자체적으로 피운 ‘올림픽 불꽃’을 안치했다. 성화를 들고 곳곳을 도는 봉송 행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도입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국민 선전용으로 이를 기획했다고 한다.
채화 이후 폐막까지 성화를 꺼뜨리는 건 올림픽 전통을 깨는 금기로 여기지만 사실 종종 꺼졌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거센 바람에 꺼져 대회 관계자가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래도 되살아나지 않아 올림피아 신전에서부터 준비해온 랜턴 등(燈)으로 불을 붙여 겨우 이어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도 성화를 주경기장 성화대에 옮기려는 순간 바람에 불이 꺼져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래서 보통 성화봉은 시속 65㎞ 강풍이나 시간당 50㎜ 폭우에도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만든다.
올림픽 개막식 최고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 순간이다. 최종 점화자와 불붙이는 방식은 대회마다 ‘일급 비밀’로 다뤘다. 보통 개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나 유망주가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불화살을 날려 점화한 1992 바르셀로나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인 1996 애틀랜타는 여전히 회자되는 점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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