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서울대 피부과의 연구비 구태(舊態)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교실(서울대병원 피부과)에서 2017년부터 연구비 6억원이 사라져 최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6년 동안 한두푼도 아니고 억대의 돈이 사라졌는데 대학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입장을 들으려 피부과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긴 한숨을 쉬더니 20초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지난해 6월, 피부과 학과장 회계 담당자로 일했던 A씨가 퇴사했다. 후임자가 회계 내역을 살펴보다 횡령 정황을 발견했다. 서울대 당국은 같은 해 12월에야 경찰에 고소했다. 한 교수는 “방만한 연구비 관리의 폐해가 이제야 드러났다”며 “터질 게 터졌다”고 했다. 피부과는 이른바 ‘풀링’이라고 하는 연구비 공유제를 시행해왔다. 교수 개개인이 따온 연구비를 풀링 계좌에 한꺼번에 모아 여러 교수가 함께 쓰는 방식인데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경찰은 A씨가 이 풀링 계좌에서 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피부과 안팎 얘길 들어보니 이 사건은 2016~2022년 피부과 학과장을 지낸 B 교수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교수는 “B 교수가 풀링된 연구비 관리를 도맡아오며 해당 계좌를 자신의 전리품처럼 자랑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관계자는 “B 교수가 회계 내역 또한 제때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B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모두 음해”라고 했다.
서울대 피부과뿐 아니라 대학·병원·연구기관의 각종 학과·연구실 등에서 풀링은 일상적이라고 한다. 과거 풀링은 학과 살림이나 대학원생 인건비 배정 등 편의를 위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으로 국가 지원이나 산학 협력 규모가 조 단위로 늘어나며 풀링 계좌가 일부 일탈 교수의 축재(蓄財)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비를 따오는 학과장이나 선임 교수들이 풀링 계좌를 자신의 개인 계좌처럼 사용하는 일도 음성적으로 비일비재하다고 복수의 대학 관계자는 말한다. 교수들이 연구비로 용역 등 월급을 주는 대학원생들은 물론이고, 후배 교수들조차 자신이 따온 연구비가 풀링 계좌에 섞여 들어가 선배 교수 마음대로 사용하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피부과 관계자의 한숨은 이런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풀링 계좌를 통해 대학원생 인건비 일부를 정기적으로 상납받아 자기 생활비로 쓰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교수가 제자의 ‘코 묻은 돈’까지 뜯어가는 현실에 절망한 많은 청년 연구자가 대학을 떠난다. 정부는 올해 26조5000억원 연구·개발(R&D) 예산을 책정했다. 일부 대학에선 본부나 산학협력단이 각 연구실에 배정된 연구비 관리 현황을 중앙에서 통제, 부정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번 서울대 피부과 논란이 연구비 풀링 구태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알려왔습니다>
[반론보도] <[단독] 끊이지 않는 연구비 ‘풀링’... 서울 의대도 6억 횡령 몰랐다> 등 2개 기사 관련
본 신문은 지난 6월 4일자 사회 섹션에 (“[단독] 끊이지 않는 연구비 ‘풀링’... 서울 의대도 6억 횡령 몰랐다”), 6월 6일자 오피니언 섹션에 (“[기자의 시각] 서울대 피부과의 연구비 구태(舊態)”)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교실(서울대병원 피부과)에서 연구비 ‘풀링’이 이뤄져왔으며, B교수가 이러한 연구비 관리를 총괄해 왔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B교수 측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어서 취재기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해 반론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 수 없었다”며 “서울대병원 피부과에는 연구비 ‘풀링’ 통합계좌가 없고 각 교수별로 연구비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어 연구비 ‘풀링’ 사실 자체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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