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석유와 도청장치
尹 “포항 앞바다에 매장 가능성”
탐사 결과·시추 지시 직접 발표
과연 이번엔 산유국 꿈 이룰까
동물의 왕국이나 명화극장만큼이나 집에 TV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됐던 것은 웃으면 복이와요, 폭소대작전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일찌감치 생각했다. 배삼룡, 이기동, 구봉서 같은 코미디언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온 국민을 웃게 만드니 얼마나 고맙고 훌륭한 분들인가!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던 1976년 1월 15일에도 나는 TV 앞에 숙연하게 앉았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연두기자회견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대통령이 나오는 모든 방송을 좋아했지만 연두기자회견만큼은 힘들었다. 너무 길었고, 애국가 제창도 없었으며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졸음을 참으며 억지로 듣고 있는데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대통령께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말씀하셨다. “와! 만세!”가 내 입에서 나왔다. 신나서 동생에게 달려가 이야기했지만 유전 따위는 알 리가 없는 동생은 시큰둥했고, 다시 TV 앞에 오니 연두기자회견은 끝이 나 있었다.
나는 당시 정유공장 사택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정유공장 소방관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매일 정유공장을 지나야 했고, 집 창문으로도 정유공장이 보였다. 야경이 특히 아름다웠다. 우리나라도 곧 부자가 된다는 희망과 “역시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분이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중첩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몇 달이 지나도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얘기가 없었다. 석유가 안 나온다는 말도 없었다. 아버지는 석유 시추는 극비 사항이니까 모든 국민이 알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 거기까지 내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아버지는 또 석유를 뽑아낼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셨다. 그렇다. 기다리면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가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 전에 비극적으로 돌아가셨다. 끝내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되는 건 보지 못하시고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아버지의 칭송은 끝났으며 결국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내 존경심도 사라졌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100가지도 더 생겼지만 그 전에는 포항의 석유가 유일한 이유였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에는 MBC를 주로 봤다. 88올림픽을 한 달 정도 앞둔 8월 4일 MBC 9시 뉴스 시간에 강성구 앵커가 첫 번째 꼭지로 물가에 관한 뉴스를 보도할 때 흰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난입하여 “내 귀 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다 끌려나갔다. 그 청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장 웃긴 장면이었다.
6월 3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은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고 시추를 지시했다며 직접 브리핑했다. 그러자 역술인 천공이 이미 두 주 전에 “우리나라가 곧 산유국이 된다”고 했다는 강의가 SNS에 떠돌았다. 정말 궁금하다. 그는 어떻게 미리 알았나? 누구 귀에 도청장치가 달린 것인가? 천공인가, 대통령인가?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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