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예능들..'파묘'가 시급합니다 [Oh!쎈 레터]
[OSEN=장우영 기자] 2000년대 중반, 배우 류승범은 한 시상식에 참석하며 롤업한 면바지에 단화를 매치한 스타일링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지 간격을 넉넉하게 입는 차림이 유행했기에 류승범의 패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과 혹평을 받았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2010년대 중반, 류승범의 패션은 대세가 됐고 당시 혹평하던 이들은 “류승범이 앞서갔다”, “선견지명이 있다”, “패션리더”라고 칭찬했다.
예능 또한 그렇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콘셉트와 진행으로 혹평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파묘’ 되면서 재평가 받기도 한다.
▲ 실시간 문자 투표가 이야기를 바꾼다..‘두니아’
2018년 6월 3일부터 9월 23일까지 방송된 MBC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이하 두니아)는 모바일 게임 ‘야생의 땅:듀랑고’를 기반으로 한 게임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을 연출한 박진경, 이재석 PD가 맡았고, 유노윤호, 정혜성, 권현빈, 이루다, 샘 오취리, 돈 스파이크, 구ㅈ성, 한슬, 오스틴강, 딘딘, 박준형, 이미주 등 초특급 라인업으로 기대를 높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방송사와 게임사의 합작을 통한 게임 원작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최초 단독 티저 홈페이지 오픈, 출연자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담아낸 일러스트와 각종 시청자 이벤트 등 대대적인 시작을 알린‘두니아’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 웅장한 스케일과 고퀄리티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대한 숲과 바다, 폭포, 각종 공룡 등이 등장했고, 의문의 워프를 시작으로 공룡의 공격, 목숨을 건 멤버들의 갈등과 생존 등 탄탄한 스토리로 하며 블록버스터급 예능의 탄생을 알렸다.
특히 예능에서는 독특하게 ‘세계관’을 구축하며 흥미를 높였다. 제작진, 출연진, 시청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예능 포맷이었던 것. 방송 중 실시간 시청자 문자 투표를 통해 멤버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설정은 6년이 흐른 지금 봐도 신박할 정도.
하지만 당시에는 관찰 예능과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였기에 ‘두니아’의 도전은 외면 받았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설정의 예능들이 등장하면서 ‘두니아’가 파묘 되고 있고, 재평가를 받고 있다.
▲ 우승 상품이 ‘정관 수술’..‘기막힌 외출’
2000년대 중반 방송된 ‘기막힌 외출’은 개그맨들이 1박 2일 합숙을 통해 숨겨진 끼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김대희, 김준호,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 홍인규로 첫 시즌을 시작한 뒤 송병철, 정명훈, 김수용, 황기순, 한민관, 김경진, 신종령, 김준현, 유민상, 김지호, 안일권, 강일구 등 내로라 하는 개그맨들이 출연해 예능감을 뽐냈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리얼 버라이어티가 유행하던 시절에 방송된 만큼 ‘기막힌 외출’ 역시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다. 하지만 지상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음담패설과 노출, 폭력 등 온갖 막장스러운 내용이 가득했다. 오히려 막장이어서 인기가 있기도 했다. 협력하는 ‘무한도전’, ‘1박2일’과 달리 틈만 보이면 공격을 하기 일쑤였다. 게임 상품으로 정관 수술이 나오기도 하고, 누군가 개그를 실패하면 바로 집단 폭행(?)을 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잔다고 물을 뿌리기도 하고, 팬티 노출은 기본이었다는 점에서 ‘기막힌 외출’의 막장 코드를 실감할 수 있다.
2013년 8월 종영한 시즌7을 끝으로 ‘기막힌 외출’은 막을 내렸다.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조기 종영을 선고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막힌 외출’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에는 너무 자극적이고, 채널의 한계로 주류로 올라오지 못한 ‘기막힌 외출’.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기막힌 외출’의 진가가 재평가 받기 시작했고, 그 멤버들이 조금은 순화된 ‘독박투어’로 다시 뭉쳤다. ‘기막힌 외출’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함을 안기고 있다.
▲ 여당, 야당 국회의원이 막대과자 게임을? ‘적과의 동침’
2011년 김주혁, 정려원, 유해진 주연의 영화 제목이 아니다. 2013년 9월부터 11월까지 방송된 JTBC 예능이다. ‘국민들에게는 통쾌함을! 국회의원들에게는 맷집을! 세계 최초 여·야 커플 버라이어티, 비무장 정치쇼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제목마저 ‘적과의 동침’으로, 김구라와 유정현이 진행을 맡았다.
전현직 의원들이 국회가 아닌 예능 스튜디오에서 만나 2명씩 짝을 이뤄 여야를 넘어 적이 아닌 동지로 퀴즈를 푸는 모습을 보여준 ‘적과의 동침’. 여야가 서로 가까워지라는 취지에서 의원들이 막대과자 먹기 게임을 하고, 민심읽기 퀴즈에서는 ‘국회의원 같아 보이지 않는 후보’ 등 몸 쪽 꽉 찬 돌직구 질문들이 쏟아졌다.
“국회의원의 갑옷을 벗겨버리겠다”고 선언하며 출발한 ‘적과의 동침’. 김무성, 박지원 의원 등 여야의 거물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지만 여야 분위기가 경색되면서 정치인 섭외에 어려움을 겪자 2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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