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자니 ‘부담’, 말자니 ‘왜곡’…기재부의 국가채무비율 딜레마
계산식 바꾸면 현 정부 부채비율 상승…‘제3의 기준’ 가능성도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왜곡해 과소 추계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기재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감사원 기준을 따르자니 국가채무를 과대 추계할 가능성이 있고, 전 정부 기준을 따르자니 감사원 지적을 수용하지 않은 꼴이 된다. 기재부는 제3의 기준 마련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기재부는 장기재정전망에서 국가채무비율 추산 방식을 바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5일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검토해 내년도 장기재정전망을 할 때 충실히 추계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 장기재정전망을 할 때 재량지출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겠다”며 “재량지출 증가율을 꼭 경제성장률에 연동하지 않고 다르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재량지출 증가율에 연동해도 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최근 5년 치 정부 재량지출 증가율에 연동해 미래 재량지출 증가율을 전망하는 식으로 계산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상 기재부 장관은 5년마다 40년 주기의 장기재정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내년 9월까지 미래 국가채무 규모를 예측하는 ‘제3차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해야 한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9월에는 2060년도의 국가재정을 예측하는 ‘제2차 장기재정전망’을 마련한 바 있다.
기재부가 장기재정전망 추계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열어둔 이유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 때문이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가 2020년 2차 장기재정전망에서 2060년도의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129.6~153.0%에서 64.5~81.1%로 낮춰 왜곡했다는 감사 결과를 지난 4일 발표했다. 홍 전 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을 세 자릿수로 전망한 기재부 실무진에게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반면 홍 전 부총리는 “재정여건 등을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반박했다.
기재부는 재량지출 추계에서 감사원과 전 정부 기준 중 무엇을 따를지를 두고 기로에 섰다. 재량지출은 법적으로 정해진 의무지출을 뺀 나머지 지출로 총지출의 50% 내외를 차지한다. 감사원 방식은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경제성장률+물가)에 연동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과 물가를 합친 성장률이 5% 오르면 정부가 이에 연동해 재량지출을 자동으로 5% 늘린다고 가정한 계산법이다. 정부는 2015년 1차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할 때 이 방식을 택했고 국회 예산정책처 등도 같은 방식을 쓰고 있다.
반면 홍 전 부총리는 총지출(의무지출+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에 연동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가 5% 오르면 총지출을 5%만 늘린다고 가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총지출이 묶이기 때문에 고령화로 의무지출이 늘어난 만큼 재량지출은 줄어드는 것으로 설계된다. 확장재정을 펴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을 가정한 계산법으로 볼 수 있다.
감사원 기준을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이 늘어나 현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전 정부 때보다 나빠진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전 정부 방식을 택하면 감사원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는 셈이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장기재정전망을 재량지출과 의무지출로 나눠 추계하는 경우는 한국과 미국밖에 없고, 유럽은 인구 관련 지출을 별도로 추계한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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