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항고·재항고에 지연 또 지연…최종 선고까지 ‘평균 414일’

유선희 기자 2024. 6.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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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책연구원 ‘형사재심 현황 보고서’ 분석해보니
기각률 18.2%로 월등히 적고
실질 무죄율 79.3% 달하지만
증거 확보 어려움 등 이유로
일반 사건 3배 이상 시간 소요
“재심 개시 효율적 제도 운용을
정당성은 심판 절차서 다퉈야”

“국가권력에 의해 행해진 폭력의 경우 관련 수사 서류 등 증거물의 생산 내지 관리·처분권을 가해자인 국가가 독점하고, 피해자는 대개 경험에 기초한 진술과 정황 증거만 가지고 진실을 다퉈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피고인에게 재심 사유의 존재에 관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피고인의 재심청구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 한삼택씨의 재심 인용결정에 대한 검찰 측 항고를 기각하면서 내린 판단이다. 형사재판에서 재심은 그 사유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국가폭력이 자행된 역사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 특수성을 인정해 재심 개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씨 사건은 유족 측이 재심을 청구해 개시 결정이 나오기까지 약 7개월, 그로부터 무죄 선고까지 8개월이 걸렸다. 총 1년3개월이 소요된 셈이다. 재심 결정에 검찰이 항고, 재항고하면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한씨 사건뿐 아니다. ‘과거사 재심사건’은 재심 청구부터 개시 결정 후 판결 확정까지 일반 재심사건에 비해 3배가량 시간이 더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재심 개시 절차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사법정책연구원의 ‘형사재심의 현황과 운용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02년부터 2022년까지 20년 동안 1심 대상 판결을 기준으로 법원이 처리한 재심사건은 총 2만3525건이다. 이 중 8.4%(1967건)가 과거사 재심사건이었다. 위헌결정에 따른 재심사건은 45.2%(1만631건), 그외 일반 재심사건은 46.4%(1만927건)였다.

과거사 재심사건은 관련 특별법 제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재심 사유를 확장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결정, 검찰의 직권을 통한 재심 청구 등으로 신청 인원이 늘었다. 과거사 재심 신청 인원은 2002년 2명이었으나 2022년 547명으로 크게 늘었다.

1심 대상 판결 기준 과거사 재심사건이 접수돼 최종선고와 같이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평균 414.77일(약 1년2개월)이 걸렸다. 평균 123.57일이 걸린 일반 재심사건에 비해 3배 넘게 걸렸다. 위헌결정으로 재심이 진행된 사건에 소요된 146.58일보다도 길었다.

과거사 재심사건은 접수부터 판결이 나오기까지 처리시간은 길었지만 무죄로 이어지는 비율은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과거사 재심에서 실제 무죄 등이 나온 비율은 79.3%로, 일반 재심이 4.7%에 그친 것과 대비됐다. 또한 과거사 재심의 실질 기각률은 18.2%로, 일반 재심 90.8%와 비교해 차이가 컸다.

항소심 판결을 기준으로 할 때도 추세는 비슷했다. 같은 기간 과거사 재심사건이 접수돼 항소심 선고가 나오기까지 평균 559.79일(약 1년7개월)이 걸렸다. 일반 재심 179.38일, 위헌결정에 따른 재심 217.43일과 비교하면 역시 길다.

재심 청구부터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오는 데에만 3년 넘게 걸린 사례도 있다. 박정희 정부 때 재일동포 간첩으로 지목돼 장기간 옥살이한 최창일씨의 유족이 제기한 재심 청구가 그랬다. 지난해 11월 재심 개시 결정이 나 지난 1월부터 재판이 진행됐고 지난달 23일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심 청구부터 무죄 선고까지 4년5개월이 걸렸다. 다만 검찰이 불복해 상고하면서 대법원 재판까지 받게 됐다.

과거사 재심사건의 처리기간이 다른 재심사건보다 긴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재심 개시 결정은 대부분 수사 과정의 폭행, 가혹행위, 영장 없는 불법 체포·감금 등 형사소송법 420조7호에 근거해 수사기관의 직무 관련 범죄가 확정판결로 증명된 때 이뤄진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권경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서울중앙지법 판사)은 “과거사 사건은 국가 또는 국가기관이 주체가 돼 위법 행위가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그사이 사건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 흐려지거나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사망하면서 관련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한씨 사건처럼 검찰이 재심 결정에 항고, 재항고까지 하면서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지체되는 것도 과거사 재심사건 처리가 늘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권 연구위원은 “재심 개시 결정까지 지나치게 오랜 기간이 소요되지 않도록 제도가 운용돼야 한다”며 “검찰이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항고·재항고가 있는 경우 신속하게 판단하고 재심 개시 정당성 여부는 재심 심판 절차에서 다투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과거사 재심사건이 접수부터 선고가 나오는 데까지 처리기간이 길어도 기각률이 월등히 적고 무죄 등의 선고가 높은 비율로 나오는 만큼 재심 개시 절차에 관한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형사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은 데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권 연구위원은 “재심에서 무죄 등 판결을 통한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장기간 무고하게 고통받아야 했고 심지어 사형선고가 집행되기도 한 재심청구인들과 주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도 중요하다”며 “현재 제도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는 재심청구인들의 경우 특별법 제정 등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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