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종부세’…종지부?
정권 따라 고무줄처럼 늘고 준 ‘종부세’
윤 대통령 “재산세와 통합” 대선 공약
민주당은 ‘실거주 1주택자 폐지’ 주장
부동산 침체 겹치며 완화론에 힘 실려
재산세와 통합하면 지자체 재정 타격
단일세율 과세 때는 ‘부자 감세’ 불러
세 부담 완화로 ‘비싼 집’ 증여는 늘어
자산 불평등 완화·부동산 투기 억제 등
종부세 원래 취지 살릴 대책도 논의를
더불어민주당에서 시작된 종합부동산세 개편 논의가 여당, 대통령실을 넘어 시민사회로 확산하고 있다.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부터 폐지, 종부세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쏟아진다.
2005년 도입된 종부세는 문재인 정부 때 강화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대폭 완화됐다. 여기에 부동산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과세 인원과 금액 모두 줄어 ‘종이호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입 당시에 비해 경제·사회적 여건이 달라진 만큼 개편 논의를 해볼 필요성은 있다. 문제는 조세 형평성과 부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은 빠진 채 세 부담 완화로만 논의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종부세 개편이 가져올 시나리오별 효과와 부작용, 논의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을 살펴봤다.
정권 따라 ‘널뛰는’ 종부세
조세 형평성 강화, 자산 불평등 완화를 위해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된 종부세는 초기에는 고액 자산 보유자에 대한 ‘부유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2008년 헌법재판소가 종부세 가구별 합산과세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뒤, 2009년 이명박 정부 들어 과세기준 금액이 높아졌고 세율은 0.5~2%로 낮아지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2006년 6108조원이었던 부동산 자산 총액은 2016년 1경713조원으로 75.4%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종부세수는 오히려 11% 줄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종부세가 강화됐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함에 따라 당시 정부는 2018년 다주택자의 최고세율을 3.2%로 높였다. 이후 집값 안정화를 명분으로 2020년 종부세 최고세율을 6%로 한 차례 더 올렸다.
정권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세금을 매기는 과세표준을 산정하기 위한 공시가격 비율)이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부세가 도입된 후 20년 동안 세율이 바뀐 것은 4번이지만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부분도 있지만 지금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조세는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이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 종부세는 정부가 산정한 공시가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69.0%로 지난해(71.5%) 대비 2.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실거래가 20억원인 아파트의 경우 공시가격을 13억8000만원으로 정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같은 시세더라도 정부에 따라 공시가격이 출렁이는 셈이다.
여기에 종부세 과세표준을 결정하는 공시가격 비율도 영향을 미친다. 종부세는 공시가격에 공제금액을 뺀 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산출한다. 대통령령에 따라 정부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100% 범위에서 결정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법정 최저한도인 60%까지 낮춘 상태다.
정권에 따라 잦은 제도 변경으로 종부세수도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다. 2017년 1조7000억원이었던 종부세 규모는 2021년에는 7조3000억원까지 늘었다가 2023년에는 4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종부세 폐지, 자산 불평등·지역 격차 확대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종부세 개편 의지를 드러냈다. 대선 공약에서도 “종부세를 지방세인 재산세와 장기적으로 통합하겠다”며 구체적인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같은 부동산에 대해 종부세와 재산세를 별도로 걷어 이중과세 성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세인 재산세는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야 하는 세금이다. 반면 국세인 종부세는 토지와 주택을 가진 사람 중 일정 기준(1주택자는 공시가격 12억원, 다주택자는 9억원)을 초과할 경우 내는 세금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사한 업무를 이중 수행해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지적도 재산세와 종부세 통합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종부세와 재산세 통합을 주장하는 측은 “중저가 주택이나 고가 주택 모두 재산가치에 비례해 세금을 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국가가 단일세율로 과세한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종부세와 재산세를 단순 통합할 경우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크게 낮아져 사실상 부자 감세가 될 수 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단일세율로 과세하는 국가들을 보면 우리보다 세율이 높다”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산 불평등 현상을 완화하려는 의지 없이 세 부담만 낮추면 결국 불평등만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는 전액 지방교부세의 재원으로 활용되는 만큼 완화하거나 폐지할 경우 지자체 세수 여건도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종부세는 약 77%가 수도권에서 걷히지만, 재원의 약 75%는 비수도권에 배분되고 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종부세를 없애고 재산세로 통합하면 강남 3구에만 세수가 몰리는 등 지역 간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1주택자 세 부담 완화, ‘똘똘한 한 채’ 현상 부추겨
최근 종부세 개편 논의의 시작은 더불어민주당발 ‘실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폐지’였다.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뛰며 집 한 채를 소유한 중산층의 세 부담도 큰 폭으로 늘어나 민심이 돌아선 만큼 그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공제액 확대 등 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확산했다.
그러나 1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 완화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수요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에게 중과세를 하는 동시에, 10년 이상 보유 주택을 매도할 경우 양도소득세 중과세(최고 62%)를 배제하는 ‘퇴로’를 열어주자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가족에게 증여하는 사례가 늘었다.
집값이 높은 지역에 1주택을 보유하고자 하는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유행하면서, 다주택자가 매도보다 증여를 더 선호하게 된 셈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을 개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1주택자에게 각종 세금 공제 혜택을 적용한 점도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최진섭 한국지방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 ‘다주택자 중과세 제도의 평가와 개편방향’을 통해 “2018년 이후 20대를 중심으로 무주택·1주택·다주택 가구에 걸쳐 가구 수가 크게 증가한 점이 통계상 확인된다”고 밝혔다.
최근 국토연구원도 ‘부동산시장 정책에 대한 시장 참여자 정책 대응 행태 분석 및 평가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위장 이혼이나 자녀 주소지 분리 등을 통해 보유 주택 수 줄이기에 나서 취득세·종부세 강화의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고 지적했다.
세 부담 완화에만 초점 맞춘 종부세 논의
전문가들은 최근 종부세 개편 논의가 세 부담 완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우려한다. 홍 연구원은 “자산 불평등 완화라는 종부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보다 세 부담을 어떻게 하면 줄여줄 것인지에 대해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도 “자산 불평등과 투기 억제를 위해 도입된 종부세를 폐지한다고 하면, 앞으로 이런 목표는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종부세 개편의 첫걸음으로 재산 과세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정유석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형평성과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합리적 과세방안’ 논문에서 “시세 상승에도 불구하고 공시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공시가격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지나치게 유연하게 변경하는 것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주택 수에서 주택가액 중심으로 과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순자산에 대해 과세해야 하는 만큼 정확한 자산 파악 등의 과세 정보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정준호 교수는 “종부세의 목적은 자산 불평등 완화뿐 아니라 소수가 부동산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도 있었다”며 “단순히 세 부담 완화보다 종부세 역할을 규정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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