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인구 급감, 당신의 선택은?

기자 2024. 6. 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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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새 생명을 출산하고 키우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이들이 소통하고 지식을 공유하도록 ‘문화적 재생산’을 시도해야 한다. 셋째, 이들에게 필요한 물적 재화를 공급하기 위해 ‘경제적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제들을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각각 출산, 교육, 직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출산은 다른 두 가지에 선행하는 필수요소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후순위로 밀린다. 특히, 경제가 고도화되어 갈수록 일의 세계가 삶의 세계를 밀어내게 되는데, 특히, 믿을 게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교육과 직업이 출산을 밀어낸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이 0.72명인 것처럼 대만도 0.83명에 불과하며, 싱가포르도 0.84명에 머문다.

매년 50조원 가까이 저출산 대책 예산으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지만 어찌 보면 착시현상이다. 실제로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저출산 관련 예산은 쥐꼬리만 하다. 오죽 답답하면 국책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자”라는 주장까지 했을까.

여기서 핵심은 ‘병행 불가능성’이다. 피 터지게 경쟁하는 성과주의로 인해 한국이라는 땅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고 출산·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직장과 육아의 병행이 어려운 것처럼, 석박사 등 학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학업과 육아 역시 서로 충돌하는 병행불가적 관계가 되어 버렸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린다. 만일 교육, 직장, 출산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아마도 출산을 위해 교육을 받을 기회나 취업할 기회를 포기하겠다는 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출산과 육아에 엄청난 인센티브를 주는 상상을 해본다. 만일 정부가 교육경쟁과 취업경쟁에 출산과 육아 경력을 가산점으로 주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여러분은 찬성표를 던질 것인가? 예컨대 직장에 취업하거나 승진할 때, 의과대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 입시, 혹은 변호사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출산과 육아 경력을 반영한다면 어떨까? 청년사업단을 공모할 때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당장 여러분은 이 게임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판할 것이다. 엄정한 능력을 검증하는 선발과정에서 출산과 육아 점수를 반영하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교육과 취업이 자신에게 ‘혜택’을 주는 반면, 출산과 육아는 ‘희생’의 과정이라면, 당연히 그러한 핸디캡을 보상해주고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통해서 진학과 취업의 문턱을 낮춰주는 것이 오히려 공정성 개념의 일부가 아닐까? 출산과 양육의 경험이 기회의 공정성 프레임 안에 반영되도록 하는 게임 체인저를 국민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물론 출산과 육아에는 직접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저출산 대책은 대개 출산비나 양육비 지원에 한정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학력 혹은 경력의 단절’이 만들어 낼 기회박탈의 위기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업은 중단 없이 이루어져야 하고, 직업 경력도 중단되면 손해를 본다. 그 틈새에 출산과 육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교육을 압축적으로 이수한 후, 직업에 압축적으로 적응해 들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둔 채로 그 틈새에 출산이나 육아를 ‘억지로 욱여넣으려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경쟁과 취업경쟁의 극단적 상황을 완화하면서 삶터와 육아의 문제를 위한 숨통을 틔워야 한다. 출산과 양육을 위한 학력단절이나 경력단절을 자연스러운 사회적 과정으로 포용해가면서, 그러한 단절을 비하하는 어떠한 표현도 강하게 금지하는 사회적 민감성을 길러 나가야 한다. 출산휴가를 비하하는 표현은 성희롱만큼이나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결혼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은 후에 하게 되는 성과물이란 생각을 희석시켜야 한다. 원한다면 대학을 다니는 중도에 결혼할 수도 있고, 직업을 가지고 아이를 기르다가 다시 공부를 마칠 수도 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경력 전환이 불가피한 고용구조 속에서 출산과 육아를 위해 한두 차례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향후 인센티브가 될 수 있도록 교육과 고용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선 공부 중독이나 일 중독 사회의 트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성과 위주 사회에서 삶 위주 사회로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은 마음들이 너무 급하다. 그래서 가정과 사랑과 출산과 육아의 문제가 눈에 안 들어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여유를 가질 때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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