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도둑과 수도승

기자 2024. 6. 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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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를 나와야 출세를 하는가 봐. 예일대란 그 예일대가 아니라 ‘예전’에 하던 ‘일’을 ‘대대’로 이어가는 출신 말이다. 진짜배기 예일대 졸업생도 입맛에 맞은 직업 구하기가 보통 일 아니지. 또 하버드대를 졸업해서 최근에 행복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된 그 친구 말고는 못 봤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스님도 하버드 출신인데 능력이 되지만 승용차 하나 맘대로 못 타. 서울에 사는 스님이나 천주교 수사님을 가리켜 수도에 산대서 수도승 수도자라 부른단다. 산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분들보다 매연을 좀 마셔야 하는 거 빼고는 형편이 대체로 나아. 사람 많은 곳에 맛난 빵이 있고, 외롭거나 우울할 틈도 없지. 성직자도 사람이라서 고립되면 우울증을 앓게 돼.

호주에 친구 만나러 갔을 때 들었는데, 코알라는 장장 하루 20시간을 잠을 자는데, 사회생활 겸 동료와 대화는 딱 20분 정도. 잠순이 잠꾸러기 코알라는 평생 밥그릇 유칼립투스 한 그루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반대로 기린은 하루에 딱 3시간만 잠을 잔대. 기린은 긴 목을 누가 깨물지 몰라 편히 눕지도 못해. 인간은 그래도 기린보다는 더 푹 잘 수 있어 다행이다.

도시에 모여 사는 대다수 시민들이 사실은 수도승만 같다. 종일 일하고 꾸벅꾸벅 졸며 기도하면서 귀가한다. 베네딕도 수도회는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표어로 유명해. 대도시에 어마무시하게 많은 ‘재가 수도사’들 때문일까. 수도원은 깡촌에 숨어 있다. 물티슈로 검댕이를 닦는 노동자가 무슨 수도며 기도냐 하겠지만, 인간은 사뭇 존엄하고 영험한 존재. 어떤 종교를 가졌든 기도하는 시간은 숙연해진다. 싸늘하고 어두운 길에 새날을 빌며 촛불을 든 사람, 넉넉하진 못해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기꺼이 돕자며 나선 사람. 도둑놈은 어딜 또 털겠다고 ‘털레 털레’ 걷는데, 일상 수도승들은 오늘도 가볍게 가뿐가뿐 걷는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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