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동학하는 삶
‘동학열’이라고 해야 할까. 19세기 말 일어난 동학(東學) 사상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수년 전부터 계속된 동학열은 최근에도 주목할 만한 성취를 잇따라 내고 있다. 도올 김용옥이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1824~1864)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깊이 있게 해설한 책을 펴낸 데 이어, 원로학자 백낙청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좌담한 내용을 정리한 책 <개벽사상과 종교공부>를 출간했다.
이뿐만 아니다. 평전과 문학 작품을 비롯해 전시와 공연 작품 또한 꾸준히 나온다.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는 별명을 가진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의 삶과 사상을 다룬 한상봉의 <장일순 평전>(2024)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70~1980년대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피난처 노릇을 한 ‘원주캠프’의 우애로운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무위당 장일순을 비롯해 지학순 주교, 김지하 시인, 생협운동가 박재일, 판화가 이철수, 이현주 목사 등의 삶과 사상 그리고 활동들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팔순 신예작가 김민환과 안삼환은 소설 <등대>(2024)와 <바이마르에서 무슨 일이>(2024)를 출간했고, <봉준이, 온다>(2012)를 펴낸 소설가 이광재는 <나라 없는 나라>(2015)에 이어 <이양선>을 연재 중이다.
최근의 동학열은 일반 시민들이 다수 참여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5월10일 광주 동곡뮤지엄에서 열린 수운 최제우 탄신 200주년 콜로키움 ‘새 문명을 여는 외침’에는 100명 넘는 방청객들이 참여해 후끈 달아올랐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또 경주 용담정, 울산 수운 유허지, 남원 은적암, 원주 해월 최시형 추모비, 이천 앵산동마을 등 동학 운동의 유적지를 찾아 답사하며 동학을 공부하는 시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왜 동학열일까. 동학농민혁명은 역사에서 철저히 패배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어떤 위기(crisis) 의식이 동학 공부라는 비평(critic)적 태도로 나타난 건 아닐까. ‘위기’와 ‘비평’을 뜻하는 그리스어 어근이 똑같다는 점은 흥미롭다. 다시 말해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라’라는 동학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은 ‘식인(食人) 자본주의’ 시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후 위기 시대를 돌파하는 위대한 ‘모심(侍)’의 사상일 수 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사물을 공경하라는 동학의 삼경(三敬) 사상은 결코 유통기한이 있을 수 없다.
동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동학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동학한다’고 말한다. <장일순 평전>의 참된 가치는 동학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허명 대신 사람의 도리와 사람이 할 도리를 먼저 생각했던 무위당의 가르침은 오래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선생이 즐겨 썼다는 ‘인파출명 저파비(人파出名 저파肥)’라는 구절을 다시 생각한다.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동학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바꾸며, ‘때(時)’가 되면 다 같이 ‘검결’을 부르며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호(時乎) 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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