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로컬 부자 선언
최근 유튜브에서 서비스되는 맛집 탐방 콘텐츠 <또간집>을 꼬박 챙겨본다. 거침없는 캐릭터의 진행자가 쏟아내는 입담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격한 반응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온라인상에 차고 넘치는 맛집 탐방 콘텐츠 가운데 내가 유독 <또간집>에 호감을 느낀 이유가 영상 자체의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몇편을 연이어 보면서 알아챘다.
진행자는 예고 없이 한 지역으로 나선다. 길에서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한다. 맛있어서 최소 두 번 이상 가본 맛집을 추천받는다. 참인지 거짓인지는 영수증으로 가늠한다. 영상 끝에 그날 추천받아 방문한 서너 곳 가운데 ‘또 갈 집’이라 명명하여 다시 가고 싶은 한 곳을 선정한다.
언젠가부터 무엇을 하든 검색부터 하는 게 일상화됐다. 하물며 낯선 지역으로 갈 때면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구하게 된다.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고, 평도 좋아서 갔는데 막상 만족스러웠는가 하면 머뭇거리게 되는 경우가 제법 있지 않나. SNS 영향력이 커지면서 광고성 콘텐츠가 넘쳐나게 됐고, 그 세계에서 ‘로컬’은 꽤 타율 높은 홍보·마케팅 키워드로 작동한다. 정작 로컬 사람은 모르거나 로컬 사람이 쉬이 가지 못하는 무늬만 로컬 맛집들이 적지 않다. 내가 그런 로컬을 원했는가 하면, 그럴 리가.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시대에 한쪽에서는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반대편에서는 낚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작동해 더 깊이 파고들다가 검색 지옥에 빠지기 일쑤다. 나의 기준, 취향, 안목은 쉽게 희석되고 어느 순간 낯 모르는 이들의 몇 마디에 무시로 휘둘리는 나를 발견한다. 가끔은 내 세상이 검색창 안에 갇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콘텐츠 과잉 속에서 여러 선택지를 재고 따지느라 새로운 경험에 앞서 어떤 설렘이나 기대감보다 조바심이 커지고, 기회비용은 어떤 선택을 해도 얼마간 아쉬움을 남기게 만든다. 이 일련의 피곤하고도 찝찝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한동안 낯선 곳으로의 여정에 심드렁해졌다. 그런 와중에 누구든 자기 돈 내고 다시 찾는 곳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 하는 기조 하나를 가지고 로컬 속으로 훅 들어가는 <또간집>에서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부지런히 맛집을 탐방하지만 또 가고 싶은 곳이 없거나 고르기 애매할 땐 최종 선택을 보류한다. 또 갈 집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지역에 다시 갈 이유가 생기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는 데서 마음이 더 풀어졌다.
그사이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됐다. 언젠가 제천에서 며칠을 보냈을 때다. 정보는 많지 않았고, 쉽게 검색되는 곳은 영 시시해 보였다. 누가 봐도 제천 사람으로 보이는, 시장통 초입에 난전을 편 할머니에게 “제가 제천이 초행인데 근처에 어디 맛있는 집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있지, 있지!”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음식도 맛있고, 메뉴도 고루 갖춰놓은 데다가, 주인 맘씨까지 얼마나 좋은지 음식값도 저렴하니 제천 시내에서 그만한 데가 없다며 콕 집어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간판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도 위치는 틀림없다고 할머니가 일러준 곳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모른다. 그곳은 바로 분식집의 대명사, 김밥천국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에 추호의 거짓이 없음을 안다. 날이 더우나 추우나 시장 귀퉁이에 난전을 펴고 접고 했을 할머니의 세계가 그려진다. 나는 이따금 혼자서 키득거리며 그날의 에피소드를 곱씹는다. 내게 제천이 김밥천국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로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생각해 보니 내게는 제천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풉 하고 웃음이 터지는 로컬들이 있다. 어느 때는 혼자서, 어느 때는 가족과, 어느 때는 친구와 기어코 기회를 만들어 드나들었다. 그 로컬들에서 나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여기가 이렇게 변했구나’ ‘다음에 와도 그대로일까?’ 나만의 시간과 이야기를 축적했다. 그 축적이 내게 삶의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심드렁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마음먹는다. 로컬 부자가 되겠노라고.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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