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뱁새와 뻐꾸기 - 인간과 인공지능

기자 2024. 6. 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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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새가 있다. 이른바 ‘탁란종(托卵種)’ 조류이다. 탁란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없으나,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기생, 번식 행위의 하나로서 조류, 어류, 곤충 등에서 관찰되고 있다. 대표적인 탁란종 조류로 뻐꾸기가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는 둥지를 치고 알을 낳는다. 4~5알이 들어 있는 뱁새 둥지에 뻐꾸기가 1~2개를 치우고 그 자리에 자기 알을 낳는다. 뻐꾸기알은 뱁새알보다 조금 큰데, 뱁새 부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을 구분하지 않고 교대로 정성스레 품는다. 먼저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뱁새가 없는 틈을 타서 아직 부화하지 않은 뱁새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땅에 떨어뜨린다. 살아남은 뱁새알 한두 개가 부화에 성공해 둥지 안에는 한동안 뱁새와 뻐꾸기 새끼들이 동서(同棲)하는데, 상대적으로 몸이 크고 적극적인 새끼 뻐꾸기가 어미 뱁새가 물어다 준 먹이 대부분을 받아먹는다. 어미 뱁새가 나간 사이 새끼 뻐꾸기는 둥지에 남아 있는 새끼 뱁새를 밖으로 밀쳐내 드디어 둥지를 독차지한다. 3주가 지나, 성장한 몸이 둥지를 꽉 채운 새끼 뻐꾸기는 둥지 밖 숲으로 나오지만, 보름가량 스스로 먹잇감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미 뱁새에 의존한다. 내년 이 시기 새끼 뻐꾸기는 어미가 되어 다시 이곳을 찾아 제 어미가 그랬듯 뱁새 둥지에 알을 낳을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생존>에 방영된 이야기다. 훌쩍 커버린 새끼 뻐꾸기에게 여전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작은 몸집의 뱁새가 뻐꾸기를 여전히 자기 새끼인 줄 알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새끼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뱁새에게서 인간(저자)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최근 인공지능에 매료된 인간은 인공지능의 성능을 고도화하기 위해 신문기사 등 저작물을 인공지능에 먹이는 일(feeding AI·machine learning)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작권이 걸림돌이 되자, 인터넷 크롤링을 통한 저작물의 무단이용을 저작권침해 책임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TDM(Text Data Mining) 면책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혹시 이 작은 어미 뱁새는 자기가 먹여 키운 새끼 뻐꾸기가 제 새끼와 알을 둥지 밖으로 밀쳐내 죽였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저보다 훨씬 큰 뻐꾸기가 자기를 보살피고 보호해 주리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인간이 인공지능과 빅테크에 거는 기대처럼 말이다.

속고 속이는 일이 그 시원(始原)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반복되고 있다면 이는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이미 생태계의 한 부분이 된 탁란종의 세계에서 교정(矯正)은 오히려 생태계 교란을 초래할지 모른다. 그런데 인간과 새는 다르다. 인간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교정하는 능력이 있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관한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켜지고 있음에도 제동을 걸지 않고 여전히 가속페달만 밟는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수 있다는 임박한 위험 앞에 눈을 감는 것은 아닐까?

작년 말 우려했던 불행한 일이 드디어 발생하고야 말았다. 농산물유통센터에서 산업로봇이 프로그램을 점검하던 40대 노동자를 상자로 인식한 나머지 압착해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인간의 노동과 창작을 대신하는 뛰어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데이터로 인식하는 이상 이런 사고의 재발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미 뱁새가 품어 부화하고 정성스레 먹여 키운 뻐꾸기가 어미 뱁새의 다음 세대인 알과 새끼를 죽여도 어미 새는 그 일을 반복한다. 공정이용(fair use)으로도 부족해 TDM 면책이란 인간(저자)의 희생을 통해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미래세대 인류의 위협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탁란종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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