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지구 구조 작전’ 중학생들이 나섰다

이홍근 기자 2024. 6. 5. 20: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 ‘중랑학생 기후행진’
상봉중, 신현중, 장안중, 중랑중, 중화중, 태릉중 학생들로 이뤄진 ‘중랑 학생 기후행진’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5일 서울 중랑구 신현중학교에서 행진 전 사전 행사에서 기후 위기 관련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한수빈 기자
“기후 위기 문제, 어른들 못 믿어” 선언문 낭독 등 첫 대규모 연합 행사
서울 중랑구 6개교 학생회 주도…시민 동참·정부엔 생존권 보장 ‘촉구’

태릉중학교 3학년 김민준군에게 ‘지구가 아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뉴스에서 ‘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 같은 복잡한 단위를 써가며 기후위기가 실존하는 위험인지, 얼마나 시급한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지만, 김군은 지난해보다 빨리 피고 져버린 벚꽃에서 위기를 읽었다. 장안중 3학년 김희재군은 이른 더위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중랑중 3학년 강진희양은 쓰레기 영상을 보며 지구의 고통을 느꼈다.

5일 오후 ‘2024 중랑학생 기후행진’에 모인 청소년들은 “우리에겐 기후위기가 생존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숫자로 설명해야 할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는 ‘당장의 문제’라고 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이유를 묻자 상봉중 3학년 장유빈양은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어른들은 우리보다 생을 일찍 마감할 거잖아요. 기후위기가 자기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행사는 상봉중, 신현중, 장안중, 중랑중, 중화중, 태릉중 등 중랑지역 6개 학생회가 기획했다. 지난 4월 6개 학교 학생회장들이 회의를 열어 기후에 관해 목소리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학교에서 기후주간을 정해 ‘급식 남기지 않기’와 같은 소규모 행사를 연 적은 있었지만, 학교들이 연합해 대규모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6교시 수업이 끝난 오후 3시30분쯤 신현중 광장에 모인 300여명의 학생들은 “기후 시계를 멈추자! 지구를 지키자!”고 외쳤다. 폐박스를 꾸며 만든 팻말엔 “지구는 한 개, 기후위기는 한계” “지구를 덜덜 떨게 만든 CO2, 그만 배출하면 안 될까요”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민준군 등 각 학교 전교회장들은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며 “학교에서 이미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배우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우리의 생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랑구 학생회 연합은 청소년의 생존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자 한다”며 중랑 학생 기후행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행동할 것, 주변 사람에게 동참을 권할 것, 지구가 지속 가능하도록 삶을 바꿔나갈 것을 약속하고, 정부에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후와 환경을 주제로 공연도 진행했다. 중화중 학생들은 북극곰 탈을 쓰고 트로트 ‘둥지’를 개사해 불렀다. 중랑중 댄스부는 환경 파괴를 주제로 한 걸그룹 ‘드림캐쳐’의 노래 ‘MAISON’에 맞춰 춤을 췄다. 신현중 힙합 동아리도 환경을 주제로 한 랩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학생들은 팻말을 들고 망우역 방향으로 행진한 뒤 해산했다.

백아영 신현중 학생회장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기후소송을 청소년들이 제일 먼저 제기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앞으로 좀 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도연 중화중 학생회장도 “청소년들이 살아갈 미래니까 어른들에게 무작정 맡기는 것보다 저희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