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마처세대와 캥거루족
청년 3명 중 2명이 ‘캥커루족’이라고 한다.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따로 살더라도 경제적·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황광훈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이 5일 발표한 ‘2030 캥거루족의 현황 및 특징’ 보고서를 보면 25~34세 가운데 캥거루족 비율은 2020년 기준으로 66%에 달했다. 집값이 비싼 수도권에서 비율이 높고,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고 한다.
걱정스럽게도 30대 캥거루족 증가세도 도드라지고 있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 정서적·심리적 요인보다 경제적·물질적 요인이 커지고 있는 방증일 수 있다. 실업 상태이거나 독신이면 캥거루족이 되는 확률이 더 높아지고, 부모와 말 한마디 안 하는 ‘은둔형 외톨이’식 캥거루족도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한 지붕 밑에서 사는데 즐거움이 없다면 비극이다.
캥거루족의 부모는 이른바 ‘마처세대’다. 선대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지만,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의미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뒤에도 20·30대 자녀를 돌보고, 80~90대 노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1960년대 출생자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마처세대 98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월평균 164만원을 부모와 자녀를 위해 지출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자녀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후 책임을 누가 져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본인’이라고 했다. 심지어 10명 중 3명은 고독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가족을 단위로,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다. 자녀는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고, 부모는 어린 자녀를 가르치고 돌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시스템에 균열이 생겨나고 있다. 마처세대와 캥거루족, 참으로 슬픈 말들이다. 한국 사회가 처한 노인 빈곤, 청년 실업, 저출생·고령화 등을 응축해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질 좋은 청년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캥거루족이 하루빨리 자립하고, 마처세대가 부모에게 마지막까지 효도를 다하고 사랑하는 자녀와 오랫동안 행복을 누린 첫 세대로 기록되는 반전이 일어나길 바란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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