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남 일’이라는 어른들 대신 ‘중학생들’이 나섰다
중학교 3학년인 태릉중 김민준군에게 ‘지구가 아프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뉴스에서 ‘tCO2-eq(이산화탄소 상당량톤)’같은 복잡한 단위를 써가며 기후위기가 실존하는 위험인지, 얼마나 시급한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지만, 김 군은 지난해보다 빨리 피고 져버린 벚꽃에서 위기를 읽었다. 장안중 3학년 김희재군은 이른 더위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중랑중 3학년 강진희양은 쓰레기 영상을 보며 지구의 고통을 느꼈다.
5일 오후 ‘2024 중랑학생 기후행진’에 모인 청소년들은 “우리에겐 기후위기가 생존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숫자로 설명해야 할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는 ‘당장의 문제’라고 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이유를 묻자 상봉중 3학년 장유빈 양은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어른들은 우리보다 생을 일찍 마감할 거잖아요. 기후위기가 자기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행사는 상봉중, 신현중, 장안중, 중랑중, 중화중, 태릉중 등 중랑 지역 6개 학생회가 기획했다. 지난 4월 6개 학교 학생회장들이 회의를 열어 기후에 관해 목소리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학교에서 기후주간을 정해 ‘급식 남기지 않기’와 같은 소규모 행사를 연 적은 있었지만, 학교들이 연합해 대규모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6교시 수업이 끝난 오후 3시30분쯤 신현중학교 광장에 모인 300여 명의 학생들은 “기후 시계를 멈추자! 지구를 지키자!”고 외쳤다. 폐박스를 꾸며 만든 피켓엔 “지구는 한 개, 기후위기는 한계” “지구를 덜덜 떨게 만든 CO2, 그만 배출하면 안 될까요”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민준군 등 각 학교 전교 회장들은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학교에서 이미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배우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우리의 생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랑구 학생회 연합은 청소년의 생존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자 한다”며 중랑 학생 기후 행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행동할 것, 주변 사람에게 동참을 권할 것, 지구가 지속 가능하도록 삶을 바꿔나갈 것을 약속하고 정부에게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기후와 환경을 주제로 공연도 진행했다. 중화중 학생들은 북극곰 탈을 쓰고 트로트 ‘둥지’를 개사해 불렀다. 중랑중 댄스부는 환경 파괴를 주제로 한 걸그룹 드림캐처의 노래 ‘MAISON’에 맞춰 춤을 췄다. 신현중 힙합 동아리도 환경을 주제로 한 랩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망우역 방향으로 행진한 뒤 해산했다.
백아영 신현중 학생회장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기후소송을 청소년들이 제일 먼저 제기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앞으로 좀 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도연 중화중 학생회장도 “청소년들이 살아갈 미래니까 어른들에게 무작정 맡기는 것보다 저희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