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꿈' '한국판 두바이' 윤 대통령 발표 띄우는 대구경북언론
[비평] 尹 포항 석유 매장 가능성 발표, 검증없는 대구경북언론
경북도민일보 "좋은 소식은 좋은 소식으로 듣자…벅찬 낭보 기대"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발표 이후 대구경북 지역언론에선 연일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윤 대통령 발표에 대한 검증은 없이 정부의 발표 내용만을 전달하며 홍보하거나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첫 국정 브리핑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브리핑에 동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 배럴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표를 두고 섣부르게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직까진 매장도 확인되지 않은 단계이고, 실제 매장량과 경제성 등 따져봐야 할 조건이 많이 남아 있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6년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으나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난 사례도 있다. 일각에선 지지율 하락 등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윤석열 정부가 성급한 판단을 했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해당 지역인 대구경북 지역언론에는 이러한 내용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경북매일은 4일자 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 포항 영일만을 '한국판 두바이'라고 이름 붙였다. “포항, 한국판 두바이 되나”라는 발언으로 시작하는 기사 <영일만에 막대한 석유·가스…포항, 한국판 두바이 되나>는 윤 대통령의 발표와 안덕근 장관의 발언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같은 날 경북일보는 1면 머리기사 <포항 앞바다서 '산유국의 꿈' 실현되나>, 매일신문은 <산유국의 꿈, 대구경북 앞바다서 실현된다>에서 '산유국의 꿈'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매일신문은 특히 해당 기사에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상징인 '한강의 기적'을 넘어 세계 초일류 국가로의 도약을 견인할 '영일만 기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며 “지역 정치권과 상공인들은 한국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후 '잘살아 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산업화시대를 주도했던 TK가 새로운 에너지 번영의 시대에서도 주인공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추측을 담은 기사다. 매일신문은 관련 사안을 3·4·5·6면을 산업 효과 기대감, 파급력에 주목한 보도들로 채웠다.
대다수 기사는 경제적 가치를 강조했다. 경북매일은 4일자 기사 <140억 배럴 석유·가스전 삼성전자 시총 '5배 가치'>에서 정부가 발표한 매장 가치를 전했다. 이 신문은 “정부가 발표한 시추 성공률 20%는 통상적으로 자원 탐사 성공률이 10% 안팎인 점을 고려해볼 때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이라고 했다. 매일신문도 같은 날 기사 <“매장가치 삼성전자 시총 5배” 철강·2차전지 안은 석유도시로>에서 “이번 개발 사업이 가져올 파급 효과는 상상 이상이라는 게 지역 경제계의 평가”라고 했다.
지역민들의 기대감을 나타낸 기사도 눈에 띈다. 경북도민일보는 4일 기사 <“포항 앞바다에 석유·가스 콸콸 쏟아지나”…시민들 '들썩'>에서도 “포항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접한 포항 시민들은 우리나라가 다시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시민 인터뷰를 실었다. 다음날인 5일 1면 머리기사 <포항 영일만 앞바다 '대왕고래'를 찾아라>에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전을 찾는 '대왕고래' 탐사프로젝트에 주목했다.
“좋은 소식은 좋은 소식으로 듣자”는 경북도민일보 사설
사설에선 '낙관은 이르다'면서도 큰 기대감을 내비치는 언론이 대다수였다. 경북도민일보는 5일 사설 <동해 유전개발, '꿈'은 키우고 지나친 '호들갑'은 가라앉히고>에서 “지금 단계에서 지나치게 흥분할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산유국이 되고 동해안 지역이 미래자원의 전진기지가 되는 꿈을 굳이 접을 이유 또한 없다”고 했다. 이어 “좋은 소식은 좋은 소식으로 듣자”며 “내년 초 가슴 벅찬 낭보를 기대한다”고 했다.
모용복 경북도민일보 편집국장도 같은 날 칼럼 <영일만에 영그는 '산유국의 꿈'>에서 “지금까지 포항에서 발견된 매장지는 육지인 반면 이번에 발표된 영일만 앞바다는 심해에 있는 유전”이라며 “경제성이 확인되고 계획대로 탐사와 시추 작업이 원활히 진행된다면 길어도 10년 후면 포항은 대한민국 산유국 중심도시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북매일은 4일자 사설 <포항 근해에 '석유밭'…한국 다시 '産油國'되나>에서 “우리나라가 다시 산유국이 되면 국제 입찰·자원 외교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사설에서도 “아직 흥분할 단계는 아니다. 경제성 확인 단계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도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신뢰성이 아주 높은 업체가 탐사를 주도했기 때문에 실제 석유·가스 자원이 심해에 매장됐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우리 국민이 모두 간절히 바라는 '산유국 꿈'이 포항 앞바다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경북신문은 5일자 신문에 <한국 단숨에 세계 11권 산유국 발돋움?>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구체적인 시추 탐사 계획과 과정을 설명하던 사설은 “상업 생산까진 시추 탐사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간 쌓아온 경험과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실제 상업 생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 석유와 가스가 매장된 것이 확인된다면 '자원 빈국'으로 여겨졌던 한국이 단숨에 세계 11위권(매장량 기준) 산유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발표에 대해선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4일 사설에서 “실제 매장량과 상업화 가능성은 탐사시추를 해봐야 알 수 있다”며 “시추 성공률은 20% 정도로 예상되는데, 석유·가스 개발 사업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여전히 실패 가능성이 더 크다. 석유가 나오더라도 채산성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표 과정에서 호들갑을 떤 것은 정부”라며 “만에 하나 예상이 어긋나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 되는 것은 물론”이라고 했다.
경향신문도 같은 날 사설에서 “정부 발표를 보더라도 경제성은커녕 매장도 확인된 단계가 아니다”라며 “해외 기업 분석 결과 개발 성공률이 20%로 상대적으로 높다곤 해도, 실패 확률이 4배나 더 크다. 이 결과만으로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며 기대를 부풀리는 게 맞았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이어 “정부 관계자들도 후속 브리핑에서 2000조 원의 경제효과나 수출을 거론하며 '다 된 밥'처럼 홍보에만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며 “10월 유신으로 궁지에 몰린 박정희 정부가 유전 개발에 매달린 것처럼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윤석열 정부가 혹여 성급한 판단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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