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칼럼] MZ세대 병사, 시대착오적 훈련소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4. 6. 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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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9일 만에 얼차려로
훈련병 죽는 현실에
자식 군에 보낸 부모들 공분
원인 규명하고 군대 변해야

아무리 생각해도 참담하고 허망한 죽음이다. 입대한 지 9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육군 12사단 훈련병 얘기다. 간호사를 꿈꿨던 청년이 군에서 얼차려(군기훈련)를 받다가 세상을 등질지 부모나 친구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한민국에서 아들로 태어나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죽음으로 내몬 중대장은 죗값을 충분히 치러야 한다" 등 울분을 토하는 글들이 빗발치고 있다.

몇 해 전 입대한 아이가 훈련소에서 보내온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잘 버티고 있지만 고립감이 상당하다. 일주일이 돼 가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아직 대변을 못 본 동기들도 많다"였다. 낯선 환경에서 긴장감이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다. 사망한 훈련병도 고작 9일 차였다. 민간인에 가까운 상황에서 상·병장도 하기 힘든 살인적인 군기훈련을 받았다는 게 공분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훈련소 입소 2주 정도가 지나면 아이가 입었던 옷가지와 편지가 담긴 '장정소포'가 집으로 배달된다. 멀쩡히 잘 있는 아이 옷을 받고도 부모들은 대성통곡하는데, 이 훈련병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사망한 훈련병은 20㎏이 넘는 완전군장으로 구보(달리기), 팔굽혀펴기, 선착순달리기 등을 반복하다가 쓰러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명백한 군 훈련 규정 위반이다. 완전군장 상태에서는 보행만 가능하고 구보를 시켜서는 안 된다. 완전군장에 팔굽혀펴기는 20년 전에도 없었다는 게 군필 남성들의 증언이다. 밤에 생활관에서 떠들었다는 이유라는데 총기·탄약 관리 등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게 27도를 웃도는 땡볕에서 가혹행위를 당할 일인가.

이런 가운데 쏟아지는 막말은 충격적이다. "요즘 애들은 나약해 빠졌다"거나 "훈련이 장난이냐. 군인들에게 장난감 총 나눠 들고 놀고 오라 할 거냐"는 '라떼는'을 앞세운 댓글이 적지 않았다. "그 정도 얼차려도 견디지 못하는 병사라면 현역에 오지 말고 공익근무로 빠졌어야지"라는 글도 있었다.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역자원 부족으로 요즘 현역 판정 비율은 90%가 넘는다. 과거에는 징병되지 않았을 이들도 대거 군복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징집 대상은 공정과 탈권위·소통을 중시하는 MZ세대다. 이들은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고 충성심에 불타는 과거 세대와는 다르다. MZ세대 성향을 고려할 때 모병제로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병역자원의 가치관 변화에 맞춘 다른 접근이 요구되는데도 훈련소는 강압과 폭력이 판쳤던 20세기처럼 운영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당나라 군대여서도 안 되지만 강군 운운하며 사람까지 잡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고가 벌어진 이후다. 육군은 훈련병이 숨진 다음 날인 5월 26일 사망 사실을 알렸고, 이튿날에는 "군기훈련 중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 정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만 했다. 군은 민간경찰과 사고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했지만, 군기훈련을 지시한 중대장은 직무에서 배제된 뒤 연가를 내고 고향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함께 동행하는 '전우조'까지 붙였다. 군이 중대장을 싸고돌수록 여론이 악화되고, 군에 대한 신뢰는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서둘러 사고 원인과 경위를 밝혀야 할 경찰이 중대장을 소환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도 성의가 없다. 훈련병의 영결식이 있던 지난달 30일 국민의힘은 워크숍을 열고 축하주를 돌렸다. 당정은 사건 후 일주일이 지난 2일에야 신병교육대 훈련 실태와 병영생활 여건을 점검해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훈련병의 억울한 죽음이 그렇게 사소한 일인가.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원 사건, 신병교육대 수류탄 사고 등 군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비극이 반복돼서야 누가 국가를 믿고 귀하게 키운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나.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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