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큰 정치인’이 되려면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5. 1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월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록삼 | 언론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2대 총선 전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며 “정치라는 무대 위에서 나라와 시민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꽤 비장한 결심을 밝혔다. 그는 비대위원장을 사퇴하면서도 “제가 한 약속을 지키겠다”면서 앞으로 계속 정치인으로서 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내비쳤다. 총선 패배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식사는 거부했지만 당직자들, 비대위원 등과 식사 정치를 통해 물밑 활동을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해외 직접구매를 제한하려던 정부 조처를 공개 비판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다 “여당 중진으로서 처신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비판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당 인사 중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그는 7~8월쯤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로서도 가장 지지율이 높다. 나날이 지지율이 추락하는 정권의 1인자를 위협하는 사실상 2인자인 셈이다.

문제는 그가 막 문을 연 22대 국회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물론 당장이야 수사 방해 및 잇따른 거짓말과 말 바꾸기식 해명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겨냥한 ‘채 상병 특검법’이 갈등의 활화산이다. 하지만 현재 권력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걷히고 나면 국민의 관심은 미래 권력이 될 ‘한동훈 특검법’에 고스란히 쏠릴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한동훈 특검법안에 담긴 내용은 크게 세가지다.

4년 전인 21대 총선 직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간부인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과 그 직원들이 비판적 정치인·언론인에 대한 고발장을 직접 작성해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에게 건네며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첫번째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 반헌법적 국기 문란 행위다. 여기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깊숙하게 연루됐다는 의혹이 가시질 않고 있다.

두 번째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 취소 항소심에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정당한 이유 없이 법률대리인을 교체해 패소를 자초했고 상고를 포기했다는 의혹이다. 한 장관의 직권남용이자 직무유기에 대한 혐의다. 세번째는 한 전 위원장 딸의 논문 대필, 봉사활동 2만시간 조작, 해외 사이트 에세이 표절 등의 의혹으로 대학의 학사업무 방해를 초래했다는 혐의다.

그가 자신의 특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향후 처신 또한 궁금하다. 물론 입시 비리 문제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부유층 자녀들 어느 누구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할 테니 한 전 위원장으로선 억울할 수 있겠다. 이달 하순 경찰 수사심의위에서 적정성 심사가 예정되긴 했지만, 경찰이 무혐의 결정을 한 사건이니 더더욱 그럴 테다. 하지만 정치인의 삶을 살겠다고 나선 이상 법과 국민으로부터 검증 대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특히나 검사 시절 정치 개입 의혹이라면 명백히 밝히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군의 정치개입처럼, 검찰의 정치개입도 민주주의 역사의 불행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를 법무부가 나서서 무력화시킨 부분 역시 사법적 정의를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초래한 행태다. 한 전 위원장 자신이 검찰의 정치개입과 무관함을 적극적으로 증명하고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정치인 한동훈’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하기에 한 전 위원장으로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보수세력을 앞세워 수세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나서서 여러 의혹 앞에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여당 의원들에게 ‘싸울 일이 아니다. 특검법을 통과시켜 나를 샅샅이 조사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달라’고 특검법을 자청하는 것이 맞다. 국민들의 조롱을 받아온 ‘스물몇개의 비밀번호’로 잠긴 휴대전화도 스스로 풀어 그가 법 절차와 법리만을 내세우는 ‘법꾸라지’가 아님을, 공적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충분함을 입증해야 한다. 각종 중대한 의혹을 남겨놓은 채 정쟁 뒤에 숨는 처신은 머지않은 시간 안에 그의 발목을 붙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처럼 자신을 죄어오는 특검법을 스스로 거부하는 방식을 답습한다면 ‘제2의 윤석열’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큰 정치인이 되려 하는 이로서 ‘좋은 처신’이란, 힘든 선택을 기꺼이 하는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이 부디 법과 국민 앞에 당당한 큰 정치인의 길을 걷길 바란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