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도 필요한 기후정의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4. 6. 5. 1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335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홍도의 괭이갈매기들이 번식철을 맞아 분주히 날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나는 지구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기후 약자’는 닭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한 통계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낸 보도자료였는데, 2017년부터 5년 반 동안 가축 2천만 마리가 폭염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최대 피해자는 폐사 가축의 91%를 차지한 닭이었다. 산란계는 에이(A)4 용지 한 장 남짓한 공간에서 1년 반을 알 낳다 죽고, 육계는 두어 달 몸을 불리다 치킨이 된다. 차라리 빨리 죽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후 약자를 말할 때는 사람을 일컫는다.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은 ‘기후위기에 취약한 계층’,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 과정에서 취약한 계층’을 기후 약자로 보고 보호하도록 한다. 하지만 동물이라고 기후 약자가 아니란 법이 있는가? 가축은 보안, 탐지, 반려 등 개인과 공공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육류 산업에 자신의 몸을 내놓는다. 야생동물은 생태계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제 몫을 함으로써 지구 환경에 기여한다. 고래의 똥은 온실가스를 바다 밑에 저장하고, 아프리카의 누(영양의 한 종)는 똥을 싸고 적당히 땅을 밟아 토양의 탄소 흡수 능력을 향상시킨다.

캐나다의 정치철학자 수 도널드슨은 이런 동물에게 ‘정치공동체’의 문을 열어주지 못할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담긴 책 ‘주폴리스’가 2011년 출판된 이후 많은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이 현실 정치와 법체계에 동물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자고 했다. 이 시대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마사 누스바움은 지난해 각 동물종의 유전자와 사회적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 목록이 담긴 세계적인 ‘가상 헌법’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난에 취약한 동물이 닭이라면,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동물이 바닷새다. 앞으로 인류는 엄청난 수의 풍력 발전단지를 지어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 세계적으로 20만 개의 해상풍력 발전기가 필요하다는 추정도 있다.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짓기에 가장 좋은 곳은 바람이 센 ‘바람길’이다. 이 바람길을 옛날부터 철새와 바닷새들이 이용해왔다. 그 곳에 해상풍력단지를 짓는 것은 반대로 새들이 밥 먹고 사랑하고 여행하는 길을 빼앗는 일이기도 하다.

해상풍력단지로 바닷새가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대한 날개가 만드는 와류에 비행 중인 바닷새가 자석처럼 끌려와 부딪혀 죽어 떨어져도 별다른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 아래는 망망대해다. 과학자들은 해상풍력단지 건설 때 바닷새의 생태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처럼 인공 구조물의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관점에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바닷새의 먹이 활동, 번식, 이주 등 생태 영향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환경부 의뢰로 한국환경연구원과 국립생태원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멸종위기종 바닷새와 번식지를 공유하는 괭이갈매기의 핵심 서식지를 집계·분석해 보았더니, 한국 바다의 5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서식지는 새들의 번식지, 먹이터 그리고 둘을 왔다 갔다 하는 새들의 통로다. 이 연구 결과는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지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풍력발전소를 지어야 하는 것 그리고 야생동물을 보전하는 것 둘 다 환경운동의 영역이었다는 점에서, 혹자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녹녹 갈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건 참 인간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동물을 희생양 삼아 기후위기에서 혼자만 탈출하려는 인간’과 ‘근대화에 이어 에너지 전환 시대에도 희생을 강요받는 동물’의 대립이라고 해야 옳다.

환경운동가조차 기후정의를 말할 때 동물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기후의 부정의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바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대전환의 시대에는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나타나지만, 가난해지는 이들도 있고, 삶터를 빼앗기는 이들도 있다. 원인을 무시하는 탄소중립은 대증요법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