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스포일러 [크리틱]

한겨레 2024. 6.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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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유튜브에서 자주 시청되는 영상에서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렇게 조언한다.

"그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은 이 영화가 도대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스포일러하면 안 된다 정도의 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그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를 것'을 권하는 건 주목할 만하다.

그러자 평론가와 기자들은 그럼 기사를 쓰지 말라는 거냐, 설마 자기들이 영화 소개에 필요한 정보와 스포일러도 구별 못하겠냐며 그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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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위키미디어 코먼스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지금도 유튜브에서 자주 시청되는 영상에서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렇게 조언한다. “영화는 내용을 모르고 보는 게 낫다.” 그는 어느 공포 영화의 예를 든다. 영화는 그의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주변에 그 영화를 추천하는 사람들이 그게 어떤 영화인지 정보를 흘리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은 이 영화가 도대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스포일러하면 안 된다 정도의 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그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모를 것’을 권하는 건 주목할 만하다. 이 무지를 파괴하는 스포일러를 ‘주제적 스포일러’라고 한다. 타란티노는 몇 년 전 자기 신작의 스포일러를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러자 평론가와 기자들은 그럼 기사를 쓰지 말라는 거냐, 설마 자기들이 영화 소개에 필요한 정보와 스포일러도 구별 못하겠냐며 그를 비난했다. 여기서 공방의 대상이 된 스포일러는 통상적인 ‘줄거리 스포일러’였다.

정보가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포일러를 먼저 접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즐겼다는 미국의 한 실험에 의해 이런 통념은 도전받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도 이와 일치할 때가 있다. 어쩌다 보니 스포일러를 먼저 접했으나 결국 재미있게 보는 데 별 지장이 없었던 책이나 영화가 있는 것이다.

이를 반박하는 미국의 또다른 실험도 있다. 이때는 줄거리 스포일러가 아닌 주제적 스포일러(‘이 이야기는 결국 ~에 관한 것이다’)를 사용했는데, 이에 노출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쪽보다 흥미와 의욕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의미부터 알려 주면 사람들은 흥이 깨지는 것이다. 작품 해석에 치중하는 서평가나 영화평론가에게는 무서운 소식 아닐까. 두 실험을 종합하면 뜻밖의 결론이 나온다. 줄거리 요약보다 의미 요약이 훨씬 해롭다는 것이다.

10년쯤 전 퇴근길에 ‘서칭 포 슈가맨’(2012)이라는 영화를 틀고 있는 극장에 들어갔다. 1970년대에 별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자취를 감춘 로드리게스라는 가수의 행방을 40년 뒤에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고 전단지도 전혀 읽지 않아서 철저한 무지 상태였다. 그 사라진 가수는 살아 있나? (나는 아주 비참한 죽음을 상상했고 제발 그렇지는 않았기를 빌었다.) 이러다 가공인물로 밝혀지는 거 아닌가? 아무튼 내 무지 덕에 영화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고, 대단원에서 나는 당연히 놀랐고, 그 충격이 개인적인 것을 건드려서 또 놀랐다. 마치 영화 ‘겨울 이야기’(1992)에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라는 주인공과 비슷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강렬한 감정이 필요하다. 강렬한 감정을 갖기 위해선 먼저 충분히 놀라기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줄거리 스포일러와 주제적 스포일러를 따로 취급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 두 가지는 보통 한 세트이기 마련이며 놀라움은 실은 깨달음인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우리가 그처럼 반전에 집착하고 스포일러에 신경질적인 이유는 역설적으로 줄거리보다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감동하고 고양되기를 원하고 개인적인 의미를 찾아내기를 원한다. 그때 놀라움 속에서 극장을 나오면서 깨달았던 건 대충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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