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맨치 둑으로 물을 우예 막노”…힌남노에 당했던 포항은 지금

배현정 기자 2024. 6. 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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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냉천 ‘힌남노 재해복구사업’ 공정률 63% 그쳐
지난 5일 오전 포항시 남구 오천읍 냉천에 세워진 홍수방어벽을 가리키며 주민 김종철(62)씨가 한숨을 내쉬고 있다. 배현정 기자

“물그릇이 이래 작은데, 하천 구실 제대로 하겠나? 큰비 오믄 요 주변 사람들 다 짐 싸야 된다.”

5일 찾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 냉천. 주민 김종철(62)씨가 2022년 가을 태풍 힌남노 내습 때 주차장 침수로 큰 피해를 입은 ㅇ아파트 맞은편 ‘홍수방어벽’을 가리키며 헛웃음을 지었다. “새로 높여 쌓은 둑이래야 무릎 맨치도 안 되는데, 불어난 물을 우예 막겠노?”

냉천 산책로 아래선 포클레인 두 대가 부지런히 흙을 퍼내고 있었다. 빠른 물살로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게 제방을 보호하는 호안 구조물을 설치하는 보강공사였다. 주민 최보경(43)씨는 “저기 산책로 놓는다고 하천 폭을 줄여놓았다. 산책로 만들기 전처럼 하천 둔치를 원상복구해서 홍수 때 물이 흘러갈 공간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 그래야 범람을 막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진행되고 있는 ‘태풍 힌남노 재해복구사업’ 모습. 배현정 기자

경상북도가 포항시 오천읍을 관통하는 냉천 12.5㎞ 구간에서 ‘태풍 힌남노 재해복구사업’에 착수한 건 지난해 5월23일. 하지만 이날까지 복구 공사 공정률은 63%에 그친다. 박종태 경상북도 건설도시국 하천과장은 “10㎞가 훌쩍 넘는 냉천 보수공사를 설계하는 데 절대적인 기간이 필요했다. 도면만 4천장이 넘는다”며 “모든 지역을 대비하기는 부족함이 있어 시급한 곳부터 사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대신 취약지구를 철저하게 점검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만 그런 게 아니다. 수해 위험이 높은 다른 시·도 취약지도 재난 대비가 더디다. 예산 부족 때문이다. 전국 17개 시·도의 재해위험지구 사업 완료율을 보면, 대부분 50~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재해위험지구는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에 취약해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지역으로, 지자체는 5년마다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경상남도는 재해위험지역 정비 사업이 도입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재해위험지역 정비사업 대상지로 809곳을 지정해 지난해까지 446곳(55.1%)의 정비사업을 완료했다. 현재 162곳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201곳은 내년 이후에나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라남도는 모두 1028곳을 재해위험지역으로 지정해 561곳(54.57%)만 사업을 완료했다. 85곳은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이며, 나머지 382곳은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첫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주민 김종철(62)씨가 냉천 복구 공사를 바라보고 있다. 배현정 기자

울산시처럼 주민 민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배수터널 설치 사업이 지연되는 곳도 있다. 울산시는 475억원 예산으로 태화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 배수터널 설치 사업을 2017년부터 진행했는데, 소음·분진에 따른 민원과 재산권 분쟁 탓에 준공 목표일을 넘겨 공사가 진행 중이다. 광주광역시는 2020년 피해가 발생한 광주 첨단1지구 등 14곳을 재해위험지역으로 정했지만 예산 확보가 어려워 일단 2곳만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경상북도의 경우, 재해위험지역이 432곳인데, 이 가운데 284곳만 정비를 완료했다. 65.7%의 정비율이다. 경기도는 재해위험지구 258곳 가운데 194곳(75.2%)의 정비를 마쳤다. 구체적으로 자연재해위험지구 106곳 가운데 72곳에 대한 정비를 끝냈으며, 급경사지 109곳 가운데 84곳에 대한 조처도 완료했다. 하지만 풍수해 위험 3곳에 대해서는 아직 정비를 끝내지 못한 상태다. 서울시는 재해위험지구 17곳 가운데 14곳(82.3%)의 정비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를 겪은 충청북도는 예산 2조4800억원을 투입해 재해위험지구 254개 지구 가운데 166곳(65.4%)의 공사를 완료했다. 제주도의 재해위험지구 정비율은 68%로, 전체 108곳 가운데 73곳이 정비를 마쳤다. 나머지 35곳 가운데 20곳은 여전히 정비가 진행 중이다.

정비율이 저조한 것과 관련해 경상남도 자연재난과 하철석 담당은 “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 대상지로 지정되면 정비 완료까지 일반적으로 3~5년이 걸린다. 올해도 전체 위험지역에 68곳이 추가되는 등 계속 늘어나고 있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재난부서 관계자도 “국비로 벌이는 사업이지만,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정비가 신속하게 시작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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