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조사본부도 ‘임성근 혐의 정황’...軍법무관리관실 반대 보고서에 뒤집힌 결론
당초 중간 판단에선 임성근 등 6명 혐의 판단...수사 외압 의혹 증폭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국방부 조사본부도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혐의가 있다는 중간판단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초동 조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과 같은 결론을 낸 것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특히 "임 전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임무를 7여단장에게 뒤늦게 전파하고, 안전대책 강구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간판단은 금세 무력해졌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중간 보고서를 제출(2023년 8월14일)한 뒤 법무·검찰라인의 의견이 제시됐는데, 이로부터 보름도 안 돼 조사본부의 최종 보고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을 제외한 2명에게만 혐의를 적용하는 내용의 문건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고, 2023년 8월21일 2명에 대해서만 경찰에 이첩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도 임성근 혐의 정황 중간판단
국방부 조사본부의 중간판단은 '故 채상병 사망사고 관계자별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 판단' 제목의 보고서에 담겼다. 시사저널이 6월5일 확보한 보고서에는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다수 담겼다. 고(故) 채 상병은 2023년 7월19일 안전장비 없이 실종자 수중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이와 관련해 무리한 수색 지시와 안전조치 등이 도마에 올랐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사본부도 당초 이러한 견해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명시된 임 전 사단장의 혐의 정황은 크게 세 갈래다. 먼저 업무 태만이다. 그는 2023년 7월15일 경상북도 재난상황실에서 호우피해복구지원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도 실종자 수색과 관련한 관계자들에게 전파하지 않다가 2023년 7월17일에야 박상현 신속기동부대장(7여단장)에게 "피해복구작전의 중점은 실종자 수색"이라며 구체적 임무를 뒤늦게 전달했다.
임무 지시도 늦었는데, 수색 지역 출동 지시도 늦어졌다. 임 전 사단장이 구체적 임무를 전달한 뒤로 한 시간이 지나서야 출동을 지시했다. 채 상병을 비롯해 실종자 수색자들이 작전 임무에 맞는 안전대책이나 안전장비 등의 준비를 할 수 없었던 배경이다.
임 전 사단장이 지시한 수색 방법의 문제도 거론됐다. 임 전 사단장은 2023년 7월18일 작전지역 현장지도 과정에서 수색자들의 안전장비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수변에)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 봐야 한다. (물가에 들어가는)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실종자를 찾은 것 아니냐. 내려가는 사람은 가슴 장화를 신어라"라며 구체적 수색 방법을 거론했다. 이에 따라 채 상병은 장화를 신고 수색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 전 사단장은 2023년 7월18일 육군 제2작전사령부에서 현장지도 전 안전교육 지시를 받았지만, 폭우로 인한 안전교육과 점검 등을 하지 않았다. 되레 작전 전개만 재촉했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책임 구역에서 위험구역과 작전구간을 선정해 위험성 평가를 하던 9중대 행정관에겐 "너네 몇 중대냐. 병력들 왜 아직도 저기 있냐. 투입 안 시키고 뭐하냐. 병력들 빨리 데리고 와"라고 지적했다..
임 전 사단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진술도 보고서에 담겼다. 임 전 사단장은 2023년 7월15~16일 이틀간 사단 지휘관 회의를 주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호우피해복구 작전의 주요 임무가 실종자 수색'이라고 공지했다고 진술했다. 안전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회의 참가자들의 진술은 엇갈렸다. 임 전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등 임무뿐 아니라 안전과 관련한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참석자들의 진술도 일부 있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결국 임 전 사단장 등 6명에게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조사본부는 2023년 8월9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지시로 해병대 수사단에서 기록을 넘겨받았다. 보고서는 이로부터 5일 뒤인 8월14일 국방부 검찰단 등의 의견을 회신받기 위해 건넨 잠정 법리 판단 결과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해병대 수사단은 8명 모두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의 가이드라인 있었나
하지만 이러한 중간판단은 한 달도 안 돼 달라졌다. 법무·검찰라인 의견이 제시된 직후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당초 2023년 8월 9~18일까지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를 검토했다. 조사본부는 이 과정에서 8월14일 국방부 법무관리실과 국방부 검찰단에 이와 관련한 의견을 요청하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법무관리실과 검찰단의 답변이 온 뒤 조사본부의 최종보고서도 달라졌다.
앞서 국방부 법무관리실은 2023년 8월9일자 보고서에서도 임 전 사단장 등에 대한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취지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해병대 조사결과에 대한 검토보고' 자료를 보면,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 내용만으론 관계자들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그리고 사망과 주의의무 위반과의 인과관계 등이 인정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혐의자들이 사건 당시 업무상과실치사 범죄를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관련자 모두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이첩하는 경우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범죄를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관련된 과오를 모두 경찰에 이첩함으로써 오히려 진실규명에 대한 책임을 경찰에 전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경찰 수사의 범위를 불필요하게 확장하는 등 수사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경찰 또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되는 경우 징계 등의 조치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해당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가 되기보단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사건이 될 우려가 있다."
그러면서 "과오는 인정되나 인과관계 등이 명확하지 않은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해선 직전 과정에서의 과오에 대해 사실관계를 정리해 이첩사건과 함께 경찰에 송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론내렸다. 법무관리관실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한 사건을 상급 수사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 재검토를 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이종섭 전 장관은 2023년 8월8일 이러한 내용을 보고받았다.
달라진 국방부 조사본부의 최종보고서
결국 국방부 조사본부의 최종보고서도 이에 맞게 달라졌다. 이종섭 전 장관에게도 보고된 2023년 8월20일자 '해병대 사망 건 재검토 결과(보고)' 문건을 보면, 임 전 사단장에 대한 혐의 적용이 어렵다고 기재됐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문건은 해병대 수사단의 기록에 대한 재검토 최종 결과 보고서인데, 당초 조사본부의 중간판단에서 달라진 셈이다.
문건에는 임 전 사단장의 초기 대응 문제와 관련해 "2023년 7월15일 경북 재난상황실 호우피해 복구지원 요청사항에 수중 수색이 있었는지 여부는 기록이 없었다"고 명시됐다. 다만 ▲현장지도 간 안전대책 미점검 등 ▲육군50사단으로 작전통제가 전환됐지만 현장지도 시 구체적 수색방법 지시(바둑판식 4인 1개조로 찔러가며 수색하라) ▲수중 수색 작전의 모습이 담긴 언론보도 사진을 보고 받아 안전 위험요소를 예지하고도 미조치 등 임 전 사단장의 과실이 문건에 포함됐다.
그런데도 조사본부는 결국 2023년 8월21일 임 전 사단장을 제외한 대대장 2명만 경찰에 이첩했다. 임 전 사단장 등 8명에서 2명으로 혐의자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이첩 대상이 줄어든 과정에서 대통령실 등의 외압 여부가 의혹으로 제기된 배경이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러한 조사본부의 재검토 과정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5월2일과 20일 조사본부 책임자였던 박경훈 전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조사본부 수사단장 A씨도 수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 측은 6월4일 정례브리핑에서 재조사 실무에 관여한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는 계속 있을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사 결과에 대한 검토를 마친 뒤에는 조사본부와 의견을 교환한 국방부 고위 관계자 등 수사 범위 확대 가능성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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