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만 늘린 '땜질보상' 부메랑···성과중심 전환땐 임금격차 완화
<하> 임금 양극화 만든 통상임금
2013년 대법 판결 후 노사 줄소송
상여금·수당 늘린 임금체계 ‘부메랑’
대기업만 이익···임금 격차 확대요인
임금구조 간소화후 임금 인상 등 만족↑ 하>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 A사는 근로자 190여 명의 일반적인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의 노조는 근로자에게 이로웠지만 결과적으로 복잡한 임금구조를 만들었다. A사는 기본급을 포함해 수당만 13개다. 사측이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마다 수당을 1~2개씩 늘린 결과다. 고정급이 오르면 통상임금도 증가하는 문제를 이렇게 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땜질식 처방은 ‘패착’이었다. 2013년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판결대로라면 A사는 2013년 이후 정기 상여금 700% 전부를 통상임금에 반영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통상임금 문제는 A사의 위기인 동시에 임금 체계 개편의 ‘기회’가 됐다. 노사는 임금 체계 개편 협의체를 꾸려 여러 개편안을 논의했다. A사는 기본급·법정수당·인센티브 등 복잡한 임금 구성 항목부터 간소화했다. 근로자들은 이 변화로 기업 이익이 어떻게 근로자에게 배분되는지 쉽게 이해된다고 반가워했다. 쟁점이었던 정기 상여금 700%는 200%만 기본급으로 넣고 300%는 인센티브로, 나머지 200%는 귀향비로 구분했다.
고용노동부가 임금 체계 개편 우수 사례로 꼽는 A사의 경우는 산업 현장의 혼란과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만든 통상임금 논란을 관통한다. 통상임금은 기본급이 적고 수당이 많은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임금 체계의 상징이자 노사 갈등의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임금 체계를 단순화하고 연공성을 낮춘 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대차 수당만 120여 개···결국 통상임금 줄소송=5일 경영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제도와 관련해 중요한 변곡점은 2012년 3월 운송 업체인 금아리무진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이 판결은 통상임금 산입 범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듬해 12월에는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자동차 부품 업체인 갑을오토텍 사건을 통해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최종 결정했다.
수당을 계산하는 근거인 통상임금의 확대는 산업 현장에서 노사의 줄소송을 불러왔다. 2016년 5월 전국경제인협회(현 한국경제인협회)가 당시 통상임금 소송을 벌이고 있는 25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기업에 대한 86건의 소송 가운데 54.7%(47건)는 2013년 전원 합의체 판결 이후 시작됐다. 현대자동차·기아·현대중공업·아시아나항공·금호타이어·한국GM·쌍용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은 법원에서 노사가 마주했다. 2021년 12월에는 현대중공업이 약 6300억 원 규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졌다. 지난달에는 포스코 노조도 통상임금 소송을 예고했다.
우리나라 임금 체계 역사를 볼 때 통상임금 소송은 구조적으로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80년대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임금 인상 억제를 유도한 데 따른 결과다. 이기권 전 고용부 장관은 자신의 저서 ‘노동시장 빅스텝’에서 “임금 체계가 복잡해지고 노사 관계 양상이 다양해졌다.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각종 수당과 상여금의 지급 실태도 복잡해졌다”며 “노사는 기본급 인상보다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상여금 인상과 각종 수당을 신설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2015년 노조에 수당 체계 단순화를 제시하면서 수당 수를 일반에 공개했는데 무려 120여 개에 달했다. 고용부가 433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임금에서 기본급 비중은 약 59%에 그쳤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기본급 비율이 낮아졌다.
◇대기업만 배 불린 통상임금···임금 양극화 확대=통상임금에 대한 우려는 이 소송에서 진 기업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구조적으로는 임금 양극화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고용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353만 7000원으로 300인 이상 사업체 월 평균 임금(607만 1000원)의 약 58%에 불과하다. 추세적으로 벌어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원·하청, 고용 형태, 성별까지 조건을 더하면 더욱 심해진다.
대기업에 몰린 상여금이 포함된 특별 급여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일례로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의 특별 급여는 148만 1000원으로 300인 미만(33만 1000원)의 약 4배에 달한다.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체는 통상임금 산입 범위가 늘어나도 혜택이 전혀 없어 더 심각한 임금 격차를 만든 요인이 됐다. 5인 미만 사업체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연장·휴일 수당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체는 2019년 기준 약 132만곳으로 전체 사업체의 약 61%에 이른다. 이 전 장관은 “통상임금 산입 범위 확대는 대기업 근로자 중심으로 적용돼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했다”고 말했다.
◇능력·성과로 임금 체계 바꾸니···임금도 올라=전문가들은 노사가 기업 특성, 규모, 인적 구성에 맞춰 적합한 임금 체계를 찾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017년 고용부가 2014~2016년 임금 체계를 개편한 138곳의 노사 대표 27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만족도는 노사가 각각 58.7%, 70.3%를 기록했다. 직원의 직무 만족(54.3%), 근로 의욕(64.9%), 조직 공정성(69.9%), 노사 협력(59.1%), 기업 매출(25.4%) 등 주요 설문에서 긍정 답변이 부정 답변을 상회했다. 임금 체계 개편 이후 ‘임금이 늘었다’는 답변도 49.3%로 감소(6.5%)를 크게 앞섰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금 체계 개편은 노사 의사 결정 구조의 다변화와 통상임금의 현대화로 요약할 수 있다”며 “정부는 기업이 성과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바꿔도 노사에 불이익이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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