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에 몸 던지고 절벽에도 올라가는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끝)

이연호 2024. 6. 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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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소방서 민경태 소방관, 2022년 9월 9일 급류에 빠진 50대 여성 구조
같은 날 늦은 밤 터널 절벽 위 매달린 70대 남성도 구조
"두려워할 것은 오직 가만히 움츠려 있는 것뿐"…"우리도 목숨은 하나"

[편집자 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지난 2021년 3월 25일 충북 단양군에서 15톤 트럭이 전복되자 민경태 소방관을 비롯한 구조 대원들이 차량 안에 있는 운전자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민경태 소방관 제공.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지난 2022년 9월 9일 오전 9시께. 당시 충북 단양소방서에서 근무하던 민경태 소방관(32)은 수난 구조 출동 지령을 받았다. 단양군 가곡면의 남한강 한 다리에서 50대 여성이 뛰어내렸단 신고였다. 전날 많은 비가 내렸기에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이에 특수구조대, 항공대 등 다른 소방 조직들에까지도 동원 명령이 내려졌다.

민 소방관은 이동 중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잠수복을 갈아입었다. 머릿속은 각종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현장에 도착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강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고 이로 인해 급류가 형성돼 있었다. 다행히 50대 여성 A씨는 강물 중간에 심어져 있는 나무를 붙잡고 몸을 지탱한 채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민 소방관은 급히 다리 아래로 내려가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자칫 위험할 수 있었지만 민 소방관에겐 오직 A씨만 보였다. 그동안 갈고닦은 급류 영법을 통해 A씨에게 도달했고, 이후 팀원들이 구조 보트를 가져와 A씨를 그곳에 태웠다. 민 소방관의 몸을 사리지 않은 적극적 대처 덕분에 상황은 금세 종료됐고, 출동하던 수난 구조대는 도중에 되돌아갔다.

그렇게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 민 소방관은 소방서에서 대기하며 그날의 출동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11시 관내 삼봉터널 위 절벽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술에 취한 70대 남성 B씨가 산길을 내려가다 길을 잘못 들어 터널 바깥 상단부까지 이르게 됐고 그곳의 철조망에 발이 걸린 상황이었다. 민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하니 B씨는 매우 위태로운 자세로 터널 상부에 매달려 “살려 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민 소방관은 이번에도 지체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몸이 앞섰다. 민 소방관의 몸은 이미 터널 위를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터널 위 덩굴과 미끄러운 경사면으로 인해 계속 아래로 미끄러졌지만 결국 기를 쓰고 B씨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민 소방관은 B씨의 안전부터 확보한 후 뒤이어 올라온 한 팀원과 B씨를 안전벨트로 연결해 먼저 터널 아래로 내려보냈다. B씨를 구급대에 인계한 뒤에야 비로소 민 소방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지난 2022년 9월 9일 충북 단양군 가곡면에서 강물에 빠진 구조 대상자를 민경태 소방관을 비롯한 구조 대원들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민경태 소방관 제공.
현재는 충북 제천소방서에 근무하는 민 소방관은 “소방관을 오랫동안 꿈꾸다 지난 2019년 소방관이 됐지만 정작 처음엔 항상 선배들 뒤에만 있어야 했고, 팀원들에게 불안한 모습만 보여 줬다”며 “결국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각종 소방 관련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다 보니 충북 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2020~2021년 2년 연속 구조 분야 2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민 소방관은 키 170cm에 몸무게 60kg 남짓의 다소 왜소한 체격이지만 “절박해지자”라는 좌우명과, 늘 그의 곁에 있는 든든한 동료들 덕분에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 소방관은 “언제나 벽은 넘어설수록 그 뒤에 더 높은 벽이 있었다. 그러나 노력 앞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은 없었다”며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가만히 움츠려 있는 나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민 소방관은 일부 국민들의 소방관들을 향한 비난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며 소방관들의 활동을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않아 주길 바랐다. 그는 “우리도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은 하나다”며 “그러나 직업적 사명감과 고된 훈련으로 단련됐기 때문에 사지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국민들을 기꺼이 구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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