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의 벗으로 17년…늦깎이 목사는 여전히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모두가 세계시민이지 않습니까. 이제는 정말 차별이 없어져야 할 텐데요.”
지난달 28일 경기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만난 이곳 소장 한윤수(76) 목사가 말했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한 목사는 말기 암과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거동이 편치 않았고, 얼굴이 여위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때로는 질문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또렷이 빛났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할 때는 한창 현장을 누비던 때로 돌아간 듯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주민의 벗’을 자처하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아픈 자신의 몸보다는 벗들에 대한 여전한 차별을 걱정했다.
■ 17년 일했지만…여전히 차별 속에 사는 벗들
한 목사는 예순의 나이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민주화운동을 돕다 생긴 빚에 쫓겨 내린 결정이었다. 전도사로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사역하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사명을 만났다. 임금을 떼이고, 몸이 망가진 채로 찾아온 이주노동자들. 한 목사는 1970년대 출판사를 운영하며 글을 통해 만났던 한국의 이름 모를 어린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그는 이주노동자의 벗이 되기로 했다. 2006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07년 화성시에 처음 외국인노동자센터를 차렸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싸우기를 17년. 그는 지금까지 약 236억원의 체불 임금을 받아냈고, 지난해에는 그간의 상담기록 895개를 모아 10권에 달하는 책 ‘오랑캐꽃이 핀다’를 펴내기도 했다.
안산서 이주노동자의 현실 목격하고
예순에 목회 길 들어선 늦깎이 목사
2007년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설립
한 목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31일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중장년층에게 주는 ‘라이나 50+ 어워즈’ 사회공헌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7회를 맞은 시상식에서 이주민 관련 활동가가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사위원의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과거 ‘왜 외국인을 편들고 한국인과 싸우냐’는 이야기를 듣던 시절보다는 상황이 나아진 게 아닐까. 한 목사는 “일부 극우단체를 제외하면 국민 인식이 확실히 달라졌고 이제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많아졌다”면서도 “지금도 외국인노동자들이 말도 안 되는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다.
■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그가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올해로 도입 20년을 맞은 고용허가제였다. 한 목사는 “고용허가제는 사실 도입 당시에는 진보적인 제도였고, 그때는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세계의 모범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사회는 거꾸로 돌아갔다. 한 목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앞세웠고, 1년 계약으로 돼 있던 근로기간을 다년 계약이 가능하게 예외조항을 뒀다”며 “노동환경이 안 좋아도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고 사실상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만은 바꿔야 한다고 17년 동안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전히 변화가 없다”고 했다.
17년간 체불임금 236억원 받아내고
상담기록 895개 모아 책 10권 펴내
‘라이나 50+ 어워즈’ 사회공헌 수상
한 목사는 그동안 돌아다닌 현장을 하나둘 떠올렸다. 그는 “외국인들이 일하는 공장에 가보면 보통 사람은 냄새 때문에 5분도 못 버티는데 외국인들은 그곳을 태연하게 걸어 다닌다”며 “코가 이미 마비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축사 옆에 기숙사를 지어놓은 곳들은 숙소에 파리가 수백만 마리는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기숙사에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 있는데도 외국인들은 그곳에 드나들며 잠을 자고 일을 한다”고 했다. 한 목사는 “외국인도 같은 사람인데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싶겠느냐”며 “법적으로 차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 “인정 많은 한국 사람…희망 놓지 않아”
17년의 세월. 그리고 변하지 않은 현실. 현장을 떠나며 절망스럽진 않을까. 그는 웃으면서 2007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한 목사는 “당시 주물 공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베트남 노동자가 수원의료원에 입원했는데 사업장을 바꾸려고 해도 사장이 도저히 들어줄 생각을 안 했다”며 “그 소식을 들은 같은 병실 한국 아주머니들이 발 벗고 나서서 항의하는 바람에 노동청이 현장 실사를 나가게 됐고, 결국 사장이 항복하고 사업장 변경에 동의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한국 사람 대부분은 인정이 많다”며 “나는 우리가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 인식 변화에도 법적 차별 여전
‘강제노동·차별 온상’ 고용허가제 바꿔야”
인터뷰를 마칠 즈음, 한 목사가 시를 읊었다. “벗들이여/황금색 아크라가스 강변의 크나큰 도시/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여/오직 선한 일들에 마음을 쏟고/이방인들을 환영하는 항구이자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들이여.” 그는 “그리스 시인 엠페도클레스의 시”라며 “이 사람 자체는 조금 괴짜 같은 면도 있지만 나는 이 시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잠시 우수에 젖었던 그는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며 시구를 읊조렸다. “백두산에서 바라본 금수강산/시민이 번창하고 사회는 분주하고/외국인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나의 조국….”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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