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양인 ‘제다이’, 31년차 배우 이정재 어디까지
디즈니플러스 5일 공개
“초등학교 때 ‘스타워즈’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내가 ‘스타워즈’에 출연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정재는 지금 막 꿈을 이룬 소년 같았다. 5일 서울 용산 한 영화관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 미국 드라마 ‘애콜라이트’ 시사회에 참가한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상기돼 있었다. 데뷔 31년, 50대 중반의 배우를 한순간에 들뜨게 한 ‘스타워즈’의 힘이다.
이정재는 ‘애콜라이트’(디즈니플러스 5일 공개∙8부작)에서 은하계의 평화를 지키는 조직인 제다이의 마스터 솔로 나온다. ‘스타워즈’는 1977년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을 시작으로 2019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까지 전세계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며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애콜라이트’는 1999년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100년 앞선 제다이 황금기 고 공화국 시대를 배경으로, 솔이 제다이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정재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앞선 시대이고, 세계관을 이어가면서 연쇄 살인이라는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는 데뷔 31년 동안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연기를 펼친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망토를 늘어뜨린 채 여러 인물을 진두지휘하는 솔의 묵직함을 잘 표현한다. 영국 억양을 살짝 첨가해 영어로 연기하는데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관상’에서 등장만으로 왕의 위엄을 표현했던 장기가 다시 한 번 발휘됐다. 이정재는 “솔은 경험이 많고 강력한 포스를 지닌다. 두려움과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인간미를 가미하는 것이 마스터로서 솔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촬영 전 ‘스타워즈’ 작품을 다시 보면서 리엄 니슨이 연기한 제다이와 결이 같은 (마음이 따뜻하고 존경받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정재는 ‘애콜라이트’에 출연하려고 런던으로 날아가 제작진 30명 앞에서 오디션(카메라 테스트)에 참여했다. 신인 때처럼 “무슨 역할인지도 모른 채 두 장면을 준비해 갔다”는데 “많이 떨렸다”고 회상했다. “오디션을 보고 나왔는데 후보가 3명 더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배우여서, ‘영국 구경이나 하고 가는구나’ 생각했는데 얼마 뒤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기뻤다.” 두 달간 오전에는 무술 훈련을 받고 오후에는 웨이트 훈련을 하는 생활을 시작으로 10개월 동안 외국에 머물며 촬영했다. 그는 그 시간을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정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3년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드라마 출연작은 11편인데, ‘모래시계’처럼 멋진 외모를 강조하거나 ‘보좌관’처럼 깔끔한 인물을 맡았다. ‘애콜라이트’의 솔은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걸 해야 발전한다”는 생각에 다양한 인물에 도전했던 국내 영화 시장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그는 “우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졌던 상상력이 완전히 폭발했다”며 “4명의 감독과 함께 작업한 경험과 오랜 역사의 ‘스타워즈’ 시리즈다 보니 소품 하나에도 역사가 있는 환경 등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애콜라이트’를 홍보하려고 미국 유명 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달라진 위상도 경험했다. ‘스타워즈’는 그동안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캐스팅해왔지만 동양인이 제다이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제다이를 동양인이 맡는 것에 반발도 있지만, 이정재의 출연으로 ‘스타워즈’가 유독 흥행하지 못했던 한국에서 새로운 팬이 유입될 거라는 기대감도 커졌다. 이정재는 “‘스타워즈’를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응원한 팬들이 많은 만큼 그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런던 ‘스타워즈’ 데이에 참석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의 50배는 더 많은 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다양한 나라의 배우들이 참여한 걸 보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애콜라이트’를 연출한 레슬리 헤들랜드 감독도 넷플릭스를 통해 “솔 캐릭터를 작업할 때 ‘오징어 게임’을 봤고, 솔 역할에 이정재 배우를 눈여겨봤다”고 했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 이후 외국에서 다양한 제안을 받으며 배우로서 많은 기회가 열린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하게 달라진 점”이라고 했다. ‘애콜라이트’는 그에게 또 어떤 길을 열어줄까. 올 하반기에는 ‘오징어 게임’ 시즌2도 기다린다. 이정재는 “조금씩 조금씩 더 발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에 감사한다”며 “어렵고 불안하기도 하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게 이 일의 매력이고 재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의혹 눈덩이 김건희 여사, 어린이들과 고양이 안고 ‘단독 일정’
- ‘사의’ 한덕수 결국 유임…대통령실, 이상민·이정식 등 개각 가능성
- 기후재앙 마지노선 ‘1.5도’…5년 내 뚫릴 가능성 80%
- “7일까지” 못 박은 우원식…민주, 법사·운영위 등 11개 1차 선출 전망
- “석유 시추 성공률 20%는 착시” 서울대 최경식 교수 [인터뷰]
- ‘뇌사’ 국가대표 3명 살렸다…“함께한 모든 순간이 선물, 사랑해”
- 전공의·의대생, 국가 상대 1천억 손배 소송…환자에 끼친 피해는
- 문 전 대통령 “치졸한 시비”…국힘 ‘김정숙 기내식’ 공세 직접 반박
- 한 겹 벗겨진 ‘경주 왕릉’ 경악…1500년 무덤 공식 뒤흔들다
- 고래 고기라며 인육 건넨 일본군…조선인 학살당한 그날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