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안병무와 교류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별세

원낙연 기자 2024. 6. 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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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한명으로 1970년대 한국 민중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3일(현지시각) 독일 튀빙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처치 타임스' 등 여러 매체가 전했다.

서구 기독교계에서 폴 틸리히, 칼 바르트와 더불어 20세기 3대 신학자 중 한명으로 꼽는 그는 유신시대였던 1975년부터 한국을 10여 차례 방문하면서 고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 안병무(1922∼1996) 박사와 문익환(1918∼1994) 목사, 김지하 시인 등과 오랜 교류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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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표하는 3대 신학자로 꼽혀
1975년부터 10여 차례 한국 방문
한국인 제자 양성…민중신학에 영향
2018년 한신대, 몰트만 기념관 개관
“하나님, 한반도 분단의 고통 함께해”
지난 2018년 9월14일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당시 한신대는 몰트만 박사에게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그의 이름을 딴 몰트만 기념관을 개관했다. 한신대 제공

20세기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한명으로 1970년대 한국 민중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3일(현지시각) 독일 튀빙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처치 타임스’ 등 여러 매체가 전했다. 향년 98.

고인은 ‘희망의 신학’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등 저서를 통해 고난받는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국내 기독교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다. 서구 기독교계에서 폴 틸리히, 칼 바르트와 더불어 20세기 3대 신학자 중 한명으로 꼽는 그는 유신시대였던 1975년부터 한국을 10여 차례 방문하면서 고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 안병무(1922∼1996) 박사와 문익환(1918∼1994) 목사, 김지하 시인 등과 오랜 교류를 해왔다.

2018년 한신대에서 그에게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그의 이름을 딴 몰트만 기념관을 개관했다. 당시 한국을 찾았던 고인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군부독재 시절 고난을 받았지만 오늘날 한국은 완전히 민주화된 사회다. 이것을 평화적으로 이뤄낸 한국인이 너무 부럽고 놀랍다”며 “하나님은 분단의 고통 속에 함께 계신다. 분단이 극복되는 과정에서 참으셨고 지금도 인내하고 계신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분단의 철책선 속에서 고난받고 계신다. 분단이 극복되고 통일되면 (한국인들은) 부활의 하나님을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192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됐다가 영국군 포로가 됐다. 벨기에 포로수용소에서 성경을 접하고 신앙을 갖게 됐고, 종전 후 독일로 돌아가 1952∼1957년 목회 활동을 한 뒤 본대학교와 튀빙겐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며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1964년에 나온 대표작 ‘희망의 신학’은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의 무신론적 저작 ‘희망의 원리’에 대한 응답이었다. 고인은 ‘이해’와 ‘신앙’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했다. 중세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성 안셀름(1033∼1109)이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고 한 반면, 고인은 “그러나 나는 또한 믿기 위해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학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믿기 위해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제3세계의 현실 비판적 신학을 섭렵하고 이를 서구 전통 신학과 접목해 대안을 모색하려고 애썼다. 서방교회를 넘어 동방교회의 신학을 포함하는 삼위일체론을 전개했다. 아내인 페미니스트 신학자 엘리자베스 몰트만-벤델은 지난 2016년 작고했다.

한국과 첫 만남은 쓰라렸다. 1974년 한신대의 초청을 받아 입국하려던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쫓겨났다. 이듬해 다시 방한해 안병무 박사와 문익환 목사 등과 교류하며 독재정권 아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고인은 “1975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박정희 정권의 군부독재 아래에서 한국인들이 고통을 받던 때였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그에 저항하면서 투옥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조용기(1936∼2021) 목사와도 1995년 처음 만난 이후 인연을 이어왔다. 유석성 전 안양대 총장 등 한국인 제자를 여러 명 길러냈고, 서울신학대와 장로회신학대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국내에서 ‘위르겐 몰트만 선집’(대한기독교서회) 17권이 번역·출간됐다.

원낙연 선임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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