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하니] 학생 교내 휴대폰 사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2024. 6. 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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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논쟁하니’ 네번째 주제는 학생 교내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찬반 논쟁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초 ‘학교에서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 제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인 학교는 절반 가량에 불과합니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이미 교육의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휴대전화 사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교육계의 찬반 목소리를 전합니다. 편집자

“이래서 찬성합니다”

“창의적 민주주의 탐구할 기회 줘야”

박한우 | 영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고 지성들이 모인다는 서울대생이 가담했다는 점에서 최근 엔(n)번방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대학에서는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무분별한 스마트폰 이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대학의 역할이 인성이나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규제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 대학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를 책임감 있게 윤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기대한다. 진학하지 않고 취업이나 다른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휴대전화의 적절한 사용 교육은 성인이 되기 전에 꼭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한 고등학생의 진정을 받아들여 “등교 후 휴대전화를 일괄적으로 수거하는 것은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지만, 학교들은 이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학교들은 휴대전화 소지가 학습권과 교권을 침해하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괄 수거를 하더라도 개인 상황에 따라 휴대전화를 허용하는 조건부 정책을 시행하는 곳도 있다.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고교에서 입시를 이유로 하는 것은 문제다. 이는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기 전 마지막 관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정책의 경직성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조건부 정책은 휴대전화를 단지 공식적 통신으로만 인식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휴대전화에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이다. 전화기는 더 이상 음성으로만 안부를 주고받거나 응급 시 연락을 취하는 도구가 아니다. 인터넷 탐색, 사진 촬영, 에스엔에스(SNS) 등 다양한 기능이 있는 의사소통 도구이다. 해외에서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셀카' 에티켓을 가르치기 위해 교과과정을 마련했다. 수술실에서 중환자를 두고 찍는 의료진의 단체 셀카처럼 무분별한 휴대전화 사용을 방지하려면, 강제적인 조치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도가 필요하다.

학생들이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마치 실험실 쥐처럼 통제된 환경에서 졸업하게 되면, 엔번방 사건과 같은 성범죄의 가해자가 될 위험이 커진다. 특히 만 18살이 되면 투표 및 선거운동뿐만 아니라 후보자도 가능하다. 만 16살 이상인 학생의 경우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 인위적으로 통제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교실 환경에서 스마트폰의 오용과 과의존을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학생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데 필수적이다.

동영상 플랫폼에서 ‘지뢰계’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자. 일본에서 유행하는 공주풍 옷을 입고 부츠를 신은 여고생들이 자신의 패션을 뽐내는 셀카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 ‘지뢰계’란 ‘밟으면 터지는 폭탄 같은 여자’라는 뜻의 일본어로, 예쁜 겉모습과 달리 심리 상태가 불안해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는 귀엽거나 화려한 드레스를 뽐내거나 자신의 성적 매력과 외모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은어다.

스마트폰은 연락 수단을 넘어 디지털 놀이터에 입장하기 위한 장비가 되었다. 동그란 문고리를 보면 손으로 돌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처럼, 학생들도 카메라 앱을 보면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미디어 연구자들은 스마트폰이나 에스엔에스에 내재된 특정한 기능이나 장치가 행동을 유도하는 특성을 ‘어포던스’라고 설명한다. 기술사회학자들은 인간 행위자와 사물 도구 사이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환경에서 인간이 창의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이 있음도 찾았다.

교육 정보화를 위해 태블릿 보급을 장려하면서, 스마트폰을 무작정 수거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다중 미디어 이용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집중력 훈련의 ‘멍 때리기’ 혹은 ‘마음 챙김’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 눈앞의 사람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세대에게 대면 만남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정보 콘텐츠로서의 셀카와 오락적 소비와 성적 흥미를 위한 불법 촬영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대상과 내용이 무엇이든 윤리 교육이나 시민성 배움 과정은 가르치는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학습자가 해당 지식을 습득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현 세대는 스마트폰을 통해 사회적 교류를 배우며, 이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문화적 영역에 나타내고 있다. 규범 일변도는 새로운 환경에 유연하게 맞춰야 한다. 스마트폰을 성적 하락과 저질 문화를 생산하는 도구로만 보거나, 학생들을 스마트폰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스마트폰은 통신이 아니라 즐거움을 공유하는 놀이 도구다. 10대들은 ‘놀이 공중’(playful publics)으로 태어났다. 학교는 스마트폰을 무조건 수거하기보다는, 디지털 도구를 정서적 유대감을 촉진하는 수준에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마트폰은 자주 함께하는 친구이지, 두려워서 피해야 할 물건이 아니다. 선거 연령 하향화와 함께 스마트폰을 허용하면, 청소년들이 사회 정치적 이슈에 가볍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창의적 민주주의를 탐구하고 경험하며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일자리, 복지, 출산 등에만 집중하면서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간과해 왔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 확대는 교육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른 여러 측면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논의해야 한다. 스마트폰 허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영향 등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발 및 시행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진은 2022년 8월3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인권 친화적인 학교 내 학생 휴대전화 소지·사용문화 정착을 위한 토론회 모습. 연합뉴스

“이래서 반대합니다”

“인권위 권고 ‘자율적 통제’ 안 통한다”

서부원 | 광주 살레시오고 교사(생활부장)

지금 학교는 스마트폰과 전쟁 중이다. 스마트폰을 일정 기간 압수하는 게 가장 큰 징벌이며,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포상이 됐다. 이미 몸에 일부가 돼버린 스마트폰은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회장 선거 출마자들이 일과 중 스마트폰 소지를 허용하겠다는 걸 공통 공약으로 내걸었다. 스마트폰이 활기찬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며 목청을 돋운다. 다른 공약들은 시시하다는 듯 친구들도 압도적 지지를 보낸다.

그들이 말하는 활기찬 학교생활이란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가 전부다. 일과 중에 게임을 하거나 에스엔에스(SNS)와 유튜브 영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떤다. ‘재미’는 선이고, ‘노잼’은 악이다.

요즘 아이들은 운동도 스마트폰으로 즐긴다. 운동장에서 뛰는 것보다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걸 훨씬 좋아한다. 해가 갈수록 체육대회 때 운동장은 텅 비어가고 관중석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온갖 종목을 도입해 봐도 역부족이다. 그 어떤 것도 스마트폰을 그들의 손에서 떼어내지 못한다.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체육 수업조차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신체 활동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떠들썩해야 할 학교 축제마저도 옛 ‘영화’를 잃었다.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영상에 심취하다 보면 무대 위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다. 객석에서의 호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보니, 무대 위의 열기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학생회조차 당일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자고 했을까.

급식소의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식사하는 모습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웹툰이나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밥을 먹는 그들에게 친구는 서로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식탁에 마주 앉은 가족들조차 각자 스마트폰만 보느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마당에 이를 딱히 문제 삼기도 뭣하다.

교실 수업도 사정이 어렵다. 수업 중에 대놓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물의를 빚어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행동을 조종하는 머리로 군림하면서 ‘성숙한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교육의 본령을 훼손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의 첨단 기능과 편리함이 되레 아이들의 지적 성장과 성숙을 방해하는 형국이다. 신문 기사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신문활용교육(NIE) 수업과 도서관 활용 수업 등은 아예 용어 자체가 사라졌고, 토론 수업과 모둠활동을 통한 협동 학습조차 힘을 잃었다.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데, 굳이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당장 종이책 읽는 걸 귀찮아하고 힘들어한다. 교과서의 목차를 살핀 뒤 단원별로 관련성을 파악하고 요약 정리하는 과제 등은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심지어 쪽수를 확인해 책장을 넘기며 서술된 내용을 찾는 행위 자체를 비효율적인 ‘바보짓’이라 여긴다.

‘네이버 지식’을 통하면 곧장 알 수 있을뿐더러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굳이 번거롭게 책을 뒤적거릴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언제부턴가 보고서 작성이 아이들에겐 가장 쉬운 수행평가가 됐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불과 몇 분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어서다.

요즘은 교사를 찾아오거나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공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든 궁금증은 스마트폰이 다 해결해 준다. 교과서도, 공책도, 필기구도 다 필요 없다. 요즘 아이들의 호주머니엔 스마트폰, 책가방엔 태블릿피시가 ‘국룰’이다.

이럴 거면 굳이 학교에 왜 나오나 싶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선 소지 금지보다 자율적 통제 역량을 키우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에선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단언컨대, 아이들 상당수는 인권위의 권고대로 예방 교육이 먹힐 수 있는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다.

대만은 지난 2015년부터 2살 이하 영유아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18살 이하 청소년도 장시간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 시행중이다. 프랑스에서도 15살 이하 학생들이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

최근 중국에서조차 18살 미만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하루 최대 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교육 현장의 ‘몸살’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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