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사면초가의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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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초패왕 항우가 해하에서 한군에 포위돼 '역발산 기개세'도 부질없음을 한탄할 때 그의 부인 우희는 한군이 부르는 초나라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며 슬퍼했다.
□ 지금의 심리전은 과거와 비교되지 못할 만큼 고도화, 다각화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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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초패왕 항우가 해하에서 한군에 포위돼 ‘역발산 기개세’도 부질없음을 한탄할 때 그의 부인 우희는 한군이 부르는 초나라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며 슬퍼했다. 고립무원을 뜻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심리전의 고전이다. 구슬픈 노랫소리에 사기가 떨어진 초군은 한군이 포위망을 열어준 곳을 통해 다 도망갔다는 고사다. 베트남전 디엔비엔푸 전투 당시 북베트남군은 포위된 프랑스 부대에 레지스탕스 노래를 확성기로 틀어 탈영을 유도한 일화가 있을 만큼 현대전에도 통용된다.
□ 심리전은 평시나 전시나 필수불가결한 방식이다. 적 수뇌부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기를 꺾는 게 목적이다.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압도적 전력으로 일으킨 1991년 1차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폭탄 대량 투하 예고일과 함께 무장해제를 설득하는 2,500만 장 이상의 전단 살포로 이라크군 수만 명이 투항했다. 구소련 정보기구인 KGB는 인력의 85%, 예산의 30%를 심리전에 쏟았다고 전해진다.
□ 지금의 심리전은 과거와 비교되지 못할 만큼 고도화, 다각화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까지 내몬 2016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스캔들은 대표적 예다. 러시아 정보기관은 민주당 대선 조직 네트워크를 해킹,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정보를 빼내 위키리크스 등에 흘리고 댓글을 생산해 클린턴 위신을 깎아내렸다. 여기엔 가짜뉴스 유포 등 여론조작을 위한 러시아 ‘트롤’ 부대가 가동된 의혹이 있다.
□ 인공지능까지 동원되는 사이버 심리전이 대세인 시대에 한반도가 냉전 시기 심리전에 매여 있는 건 북한이 인터넷 사각지대인 탓이다. 탈북자단체가 남한의 가요, 드라마 등을 전단과 함께 담은 풍선을 북쪽으로 띄우는 배경이다. 우리 대중문화 침투에 예민하게 반응해온 북한이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통제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K팝을 '악성 암'이라 했다는 외신도 있다. 북한 주민을 타락시키는 ‘사상적 오물’에 맞서 오물 풍선 1,000여 개를 남쪽에 보낸 게 그들만의 ‘은유’인지 모르겠다. 해킹 공작에 혈안인 북측 행태는 차치하고라도 정상국가 대응 수준을 크게 벗어났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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