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중 항공기와 버스 충돌···실전 같은 ‘레디 코리아’ 훈련

주영재 기자 2024. 6. 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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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레디 코리아 훈련에 참가한 소방대원들이 모형 항공기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이베큐에이트(evacuate)! 이베큐에이트(evacuate)! 탈출하세요! 탈출하세요!”

기장의 다급한 안내 방송이 기내에 울려 퍼졌다.

6월 5일 일본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레디항공 RE602편’이 인천공항 제4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하던 중 눈 깜짝할 사이에 긴급탈출을 지시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순간풍속 40노트(초당 20.5m) 이상의 강풍경보가 발효된 상태였다. 풍향과 풍속이 급격히 변하는 ‘급변풍’이 옆면을 밀면서 비행기가 활주로와 유도로를 이탈해 인근에서 승객을 태우고 이동하던 버스를 추돌했다.

충돌 직후 기장은 관제탑에 사고사실을 알리고, 긴급탈출을 지시했다. 비행기 좌측 전면 문과 비상슬라이드를 통해 자력 탈출이 가능한 승객들이 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우선 탈출했다.

충돌 후 수초 만에 빨간 연기가 항공기에서 피어올랐다. 버스에도 불이 붙었다. 관제탑의 핫라인을 통해 공항공사의 통합운영센터, 공항소방대, 인천소방본부, 영종소방서 순으로 상황이 전파됐다.

사고 상황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열린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을 위한 가상의 시나리오이다. 레디 코리아 훈련은 기후위기와 도시 인프라 노후화 등 잠재된 위험 요인으로 발생하는 대형·복합재난에 대비해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대비태세를 점검하는 훈련이다.

올해 3월 석유화학단지 복합재난 대응 훈련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실시하는 레디 코리아 훈련이다. 지난해부터 치면 네 번째이다.

이날 훈련은 실제 공항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복합재난 상황을 가정했다. 2022년 10월 필리핀 세부 국제공항에서 착륙 중이던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공항시설과 충돌한 사례를 참고했다.

지난 5월 21일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갑작스러운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급강하하면서 1명이 숨졌듯, 불규칙한 돌풍은 항공 안전에 큰 위협요소가 된다. 싱가포르 항공 사고의 원인이 수직 방향의 돌풍이었다면, 이번 훈련에선 착륙 중 수평 방향의 돌풍이 분 것으로 가정했다.

충돌로 인한 충격과 화재로 항공기에서 20명, 버스에서 2명이 숨지고 중상 44명, 경상 76명의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구조와 화재 진압 과정이 매뉴얼에 따라 급박하게 진행됐다.

인천공항 공항소방대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공항소방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라 공항 내 활주로의 모든 지점과 사고 현장에 3분 이내에 도착해야 한다. 공항소방대 소방차에서 물과 소화약제가 비행기 위로 쏟아졌다.

서울지방항공청 현장출동반은 원활한 구조 활동을 위해 사고지역에 구조헬기를 제외한 모든 항공기의 운항을 통제했다. 사고 발생 10분 후 영종소방서 출동대가 도착했다. 영종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은 현장 지휘를 인계받고, 관내 모든 소방력을 동원하는 대응2단계를 발령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영종소방서 진압대원과 구조대원, 공항소방대 대원들이 항공기에 진입했다. 선착 구급대원들은 다수사상자 구급대응매뉴얼에 따라 즉시 임시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중증도를 분류해 이송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이미 사망한 사람(블랙)보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사람(레드)이 우선한다.

5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레디 코리아 훈련에 참가한 소방대원들이 들것으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119 종합상황실은 행안부, 국토부, 인천시, 중구 등 관계기관에 즉시 상황을 전파했다. 행안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범정부 총력 대응체계로 전환했다.

사고 발생 37분이 지난 시점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소방대원 한 명이 비행기 내부에 고립된 것이다. 소방본부 119특수대응단은 신속동료구조팀을 투입해 고립된 대원을 구조했다. 항공기에서 폭발음이 잦아지면서 대원들은 화재진압용 수관을 타고 비상탈출했다.

대원 탈출이 완료된 시점에서 항공기에서 불이 거세게 일어났다. 긴급구조통제단장 지시에 따라 소방차량이 화재진압 대형으로 항공기 주위에 포진해 일제히 방수를 실시하자 1분 남짓 지나 불이 잦아들었다.

약 1시간10분 동안 진행된 레드코리아 훈련은 실전을 방불케했다. 훈련 상황임에도 가슴을 졸이게 하는 긴박함이 느껴졌다.

아직 훈련 상황과 유사한 사고가 국내에서 발생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없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기후변화로 난기류가 더 잦아지고 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기 사고는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관련 기관 협조하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훈련이 꼭 필요하다.

이번 훈련에는 보잉 747 항공기의 약 60% 크기인 모형항공기를 비롯해 구조헬기, 소방차, 재난의료지원차량 등 59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21개 기관에서 352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모든 관계기관이 총출동해 대응역량을 선보인 셈이다.

이날 훈련에 참여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과 민간병원, 군부대까지 협력해 대규모 복합재난에 대비한 대응역량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올해 레디 코리아 훈련 횟수를 4회로 확대했다. 하반기에는 고속도로 터널 사고 등 다양한 잠재위험에 대비하는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맨 오른쪽)이 5일 열린 레디 코리아 훈련에서 재난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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