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뉴진스 ‘흑진스’···트리플에스가 그리는 불안한 소녀의 세계
‘그래 모두의 학창시절이 디토(Ditto)는 아니잖아. 다시 해보자.’ ‘나 다시 해볼래. 고마워 소녀들아.’
그룹 트리플에스가 지난달 8일 공개한 ‘걸스 네버 다이’ 뮤직비디오에는 4일까지 1만1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댓글 내용이 보통 아이돌 그룹 뮤직비디오에 달리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는 자살 시도했던 경험을, 누군가는 앓고 있는 병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됐던 일을, 또 다른 누군가는 깊은 우울증을 앓았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댓글의 끝은 모두 ‘고맙다, 노래가 힘이 됐다’는 것이다. 어떤 노래이길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놓게 하는 것일까. 트리플에스가 그리는 소녀의 세계란 무엇일까.
불안하고 위태로운 소녀의 모습을 그리다
트리플에스는 특이한 아이돌 그룹이다. 일단 멤버가 24명이다. K팝 그룹 중 인원이 가장 많다. 2022년 그룹명이 먼저 공개된 뒤 2년에 걸쳐 멤버를 모았다. 24명의 멤버들은 소규모 유닛으로 활동하며 앨범을 내는데, 활동 기간 중 앨범 판매량이 10만 장을 넘기지 못하면 그 유닛은 없어진다. 트리플에스는 ‘팬 참여형’ 그룹이기도 하다. 자체 애플리케이션 ‘코스모’ 안에서 이루어지는 팬 투표를 통해 유닛을 만들고, 앨범에 들어갈 노래도 결정한다.
지난달 8일 발매된 <어셈블24>는 멤버 24명이 처음 ‘완전체’로 모여 낸 앨범이다. 타이틀곡 ‘걸스 네버 다이’는 음원이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입소문을 타고 음원 차트 순위권에 진입했다. 4일 기준 유튜브 탑100 13위를 기록했는데, 중소 기획사(모드하우스) 소속 아이돌 그룹 노래로는 거의 유일하게 높은 성적이다.
트리플에스가 그리는 소녀의 모습은 요즘 대세인 ‘밝고 청량한 소녀’와 ‘강한 여성’ 사이 그 어디쯤에 있다. ‘걸스 네버 다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소녀들은 하나같이 불안하고 위태롭다. 빈 건물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빈 컵라면이 잔뜩 쌓여 개미가 나오는 방에서 인터넷 게임을 한다. 서로 화장을 해주는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소녀인데, 뉴진스의 ‘디토’나 ‘버블검’에 나오는 그때 그 시절 누구나 좋아했던 풋풋하고 설레임 가득한 소녀의 분위기는 없다. 팬들 사이에서 ‘뉴진스의 어두운 버전’이라는 의미의 ‘흑진스’라고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15세 이상 관람가인 뮤직비디오는 3분44초 내내 꽤 직접적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어떤 소녀는 물을 가득 받아놓은 욕조 안에 얼굴까지 담갔다 화들짝 놀라고, 교복을 입은 소녀들은 손을 잡고 옥상 난간에 선다. 횡단 보도를 건너다 가만히 멈추는 바람에 차에 치일 뻔한다. 뮤직비디오는 소녀들의 오열하거나 소리치는 모습 대신 무표정한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 깊은 우울감을 표현한다. 무거운 영상과 달리 노래의 가사는 단순하고 희망적이다. “끝까지 가볼래 포기는 안할래 난” “쓰러져도 일어나” “고통 시련 다듬어 내가 될게”. 트리플에스는 이전에 발표한 유닛 곡 ‘라이징’에서는 고통을 겪은 소녀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걸스 캐피탈리즘’에서는 ‘내 삶의 기준은 나’라고 하는 소녀의 모습을 그렸다.
모드하우스 관계자는 “모두가 빛나는 미래만을 이야기하지만, 빛 하나 비추지 않는 절망 속에 버티고 있는 소녀들도 어딘가 살고 있고,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리플에스의 그룹 소개 문구는 ‘모든 가능성의 아이돌’이다. 팬 참여형 아이돌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세계도 비슷하다. “음악을 통해 가능성과 희망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 앨범으로 많은 소녀들이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트리플에스는 이번 앨범 발표와 함께 일본 활동도 시작한다. 일본 소니 뮤직의 레이블 SME 레코드, SM엔터테인먼트의 일본법인인 스트림 미디어 코퍼레이션과 레갈리아스가 공동으로 매니지먼트를 담당한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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