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신분 숨긴 채 이주노동자 ‘함정수사’에 이용…인권위 진정 기각

이지혜 기자 2024. 6. 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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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신분을 감추고 접근한 뒤 이주노동자에게 돈을 주고 불법 송금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함정수사'에 이용한 사건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인권침해'를 인정하고도 진정을 기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정사건 처리결과 통지서를 보면 인권위는 "피진정인(ㄱ경사)이 피해자가 불법 환전업자에게 송금하도록 비용을 주는 등 불법행위를 조장한 것이 인정되고 인권침해에 이르렀다"면서도 "은평서는 피진정인을 직무 배제하고 감찰조사를 실시, 서면경고장 발부, 인사발령 조치를 하였는바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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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고. 한겨레자료사진

경찰이 신분을 감추고 접근한 뒤 이주노동자에게 돈을 주고 불법 송금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함정수사’에 이용한 사건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인권침해’를 인정하고도 진정을 기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경찰관이 이미 서면경고를 받아 별도의 구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였는데, 이주노동자단체는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재발방지 대책 등을 권고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포천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 등은 은평경찰서 정보안보외사과 소속 ㄱ경사가 이주노동자를 함정수사에 동원하는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ㄱ경사는 지난해 3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행사에 경찰 신분을 숨긴 채 참여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여기서 만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ㄴ씨에게 자신을 ‘테러리스트 잡는 특수경찰’이라 소개한 뒤 50만원을 주고 불법 해외송금을 부탁했다. 함정수사로 불법 환치기 업자를 검거하기 위해 ㄴ씨에게 불법행위를 시킨 것이다.

ㄱ경사는 “해외송금 업자는 불법이지만 이용자는 불법이 아니다”고 거짓말하며 법을 잘 모르는 ㄴ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ㄱ경사의 말과 달리 외국환거래법은 불법 해외송금 업자는 물론 이용자도 처벌하고 있다. 아울러 ㄱ경사는 “도와주면 매달 생활비를 주고 좋은 비자로 바꾸도록 도와주겠다”고 ㄴ씨를 회유하기도 했다. ㄱ경사 지시에 따라 불법 해외송금을 한 ㄴ씨는 이후 은평경찰서에 나가 참고인 진술서도 작성했는데, 이 과정에서 ㄱ경사는 자신이 해외송금액을 주었다는 사실을 빼고 쓰도록 요구했다.

ㄴ씨가 은평경찰서에서 작성한 자필진술서 중 일부. 진정대리인 제공

이 사실을 알게 된 포천이주노동자센터는 지난해 7월 인권위에 진정했지만, 인권위는 지난 4월 이를 기각했다. ㄱ경사의 불법행위 조장 등 인권침해 행위를 인정했지만, 인권위가 더 할 일이 없다는 취지였다. 진정사건 처리결과 통지서를 보면 인권위는 “피진정인(ㄱ경사)이 피해자가 불법 환전업자에게 송금하도록 비용을 주는 등 불법행위를 조장한 것이 인정되고 인권침해에 이르렀다”면서도 “은평서는 피진정인을 직무 배제하고 감찰조사를 실시, 서면경고장 발부, 인사발령 조치를 하였는바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피진정인 소속 기관의 서면경고 등의 조처만으로 인권침해 구제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셈이라 지나치게 안일한 결론을 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법 44조는 위원회가 진정을 조사한 결과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일어났다고 판단할 때,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의 중지’는 물론이고 ‘원상회복, 손해배상 등 구제조치’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인권침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 등을 권고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진정 대리를 맡은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인권침해가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서면경고로 할 일을 다 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적어도 손해배상이나 동일하거나 유사한 인권침해 또는 차별행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조치 등을 권고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ㄴ씨 쪽은 경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위법성을 따져볼 예정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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