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미디어를 묻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언론 위축?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김영훈 민주당 문화체육관광 수석전문위원
"새로운 정부광고 기준, 편집 독립권 규정한 신문법 필요"
"유인촌 장관, 문화·예술 이념적 편 가르기 문제 개선해야"
[미디어오늘 윤수현, 금준경 기자]
지난 21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문화·관광·체육 분야를 관장하는 문체위는 비교적 평온한 상임위원회로 분류되지만,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가 나오자 갈등이 분출된 것이다. 야당뿐 아니라 언론계와 시민단체들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한 민주당을 비판했다.
김영훈 민주당 문화체육관광 수석전문위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디어오늘과 만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언론 위축 효과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검열이 아니라, 검증 강화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또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모 사업에서 '정치적 중립 소재 요구, 특정 이념 배제 지침'을 내리는 등 정부가 문화예술을 이념적으로 편 가르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김영훈 수석전문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21대 국회 문체위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21대 국회 문체위에 대한 총평가를 부탁한다.
“여야가 정쟁 없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양보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물론 정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언론중재법 사태 때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자료 제출 미비 문제도 있다. 특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문제가 컸는데, 박보균 전 장관이나 유인촌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자료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자료가 없으니 제대로 된 검증을 하기 힘들기도 했다. 22대 국회에선 개선됐으면 한다.”
- 21대 국회 문체위에서 가장 첨예한 안건은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였다.
“여야 대립은 물론, 많은 반대가 있었다. 물론 언론계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경에는 언론보도 피해자가 있다. 언론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언론보도에 대한 피해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찬반 논의 이전에 '오죽했으면 이런 논의가 나오게 됐나'를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민주당은 유튜브 등 유사언론에서 나오는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피해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유사언론에 대한 피해구제 법안(정보통신망법)을 약속했는데, 이 논의 과정을 참고해 언론중재법 입법 방향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정청래·양문석 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언론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되면 손해액 3배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단체는 성명을 내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날개를 달아주려는 법안”이라며 법안 추진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인해 위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규제가 있으면 업계 전반에서 위축 효과가 발생한다. '윤석열차 사건' 이후 예술인들의 자기 검열이 강해진 게 대표적 사례다. 이런 것을 보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언론 종사자들의 취재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다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자기 검열이 아니라, 검증 강화를 통해 제대로 된 뉴스를 생산한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 언론계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자유와 직결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규제 법안이 나오는 것이니 그런 반응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통과된다고 해도 재판부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기사를 썼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국회에서 논의되기 이전에 언론 자율규제 강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통합형 자율규제기구가 현실화되지 못했는데, 아쉬움이 크다.”
- 신문사 편집위원회 의무화 등 언론사 편집 독립성을 보장하는 신문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좌초됐다.
“아쉽다. 문체위가 언론중재법에 매몰된 측면이 있다. 신문법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편집권 독립에 대한 법 조항을 의무화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 한국ABC협회 부수조작 논란도 나왔다. 이후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체지표를 만들었지만, 논란 끝에 사라졌다. 생각하는 대안이 있는가.
“한국ABC협회 신뢰도에 의문이 생긴 상황이다. ABC협회를 통한 부수공사를 다시 실행하는 건 이치에 안 맞는 것 같다. 중소규모 신문사가 느끼는 회비 부담도 크다. 현재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을 보면 기금 지원을 받기 위해선 ABC협회에 가입해야 한다. 이런 법은 22대 국회에서 손을 봐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정부광고 기준도 필요하다. 광고주 정보 제공을 위해서다. 객관적인 광고 지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 문화 분야와 관련해 아쉬운 점은 없는가.
“올해 문화사업 상당 부분이 폐지되거나 예산이 삭감됐다.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산은 50%,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사업 예산은 40% 정도 감액됐다. 아쉬운 부분이다. 또 창작자 중심의 정책보다는 업계 중심의 정책이 많아졌다는 점이 아쉽다. 22대 국회에선 창작자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 분야 표준계약서가 대표적이다. 문화계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게 목표다. 물론 업계 반대가 크다. 낮은 단계에서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한다면 길이 있을 것으로 본다. 표준계약서가 강제화되지 않는다면 불공정 계약 문제가 더 불거질 수 있기에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 문체위가 다루는 사안 중 다른 상임위와 중첩된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AI 저작권 이슈가 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AI기업의 저작권 면책 규정을 강조하고 문체위는 창작자를 대변하는 기조다. 앞으로 이런 사안이 많아질 수 있는데, 상임위를 넘어서는 정책 협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국회법에 따르면 '연석회의'가 있다. 여러 상임위가 모여 회의하는 자리다. 현재 미디어 환경이 복잡해지고 있지만 정부나 국회에는 칸막이가 있다. 함께 의견조율하는 자리가 필요한데, 21대 국회에서 미디어 분야 연석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시도가 있었으면 한다. 문화분야 불공정행위를 근절하자는 취지의 문화산업공정유통법도 상임위 차원의 논의가 필요했다. 문체위는 창작자를 위해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과기부나 방통위에서 반대했다. 결국 본회의를 넘지 못했다.”
- 22대 국회에서 꼭 이루고 싶은 언론·미디어 정책은.
“편집독립권을 규정한 신문법 개정안, 통합형 언론 자율규제기구 지원, 언론인 재교육 지원 정책이다. 언론인은 국민에게 진실보도와 사회권력 견제, 사회 미담 전파 등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인식과 여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지않나. 이에 비해 언론인에 대한 재교육, 소양 연수 등은 부족한 형편이다. 기사형 광고 제재에 대한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 유인촌 장관은 민주당과 소통을 잘하고 있는가.
“개별 의원실과 소통은 잘한다고 한다. 다만 소통과는 별개로 문화예술을 이념적으로 편 가르는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을 좌파, 우파로 가르면 궁극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힘들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문화를 문화 자체로 인식했으면 한다. 작품에 정치색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칸막이 문화정책은 이미 높아진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까.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와 지원 불간섭주의를 주장했다. 하지만 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윤석열차 사건이 있다. 또 최근 영진위는 영화 교육사업 수행자 공모에서 '정치적 중립 소재 요구, 특정 이념 배제 지침'을 내렸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예술인의 자기 검열이 강해지고, 창작 활동이 소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김영훈 수석전문위원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당직자로 활동했으며, 2011년부터 문화 분야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문위원은 민주당 정책위원회 소속으로 당의 정책을 개발하고 기획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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