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상과 호텔키 사진만으로 퍼뜨린 루머, 이렇게 온라인서 번져나갔다
국내 3대 연예 기획사로 꼽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4일 장 막판 10% 가까이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소속 아티스트의 사생활과 관련된 증권가 정보지(지라시)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 SNS에서 시작된 지라시는 어떻게 한국 주식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걸까.
4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는 SM엔터 소속 그룹 NCT 멤버 쟈니와 해찬이 일본에서 성매매와 마약을 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루머가 급격히 확산했다.
그 시작은 일본 도쿄의 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여성이 자신의 SNS에 올렸다는 사진이었다.
호텔 카드키를 쥔 여성 세 명의 손, 빈 술병과 술잔이 가득한 테이블을 찍은 사진이었다. 호텔 밖에서 찍은 사진에는 쟈니, 해찬의 이름을 언급했다. 성관계를 추정케하는 글을 올렸고, NCT 멤버들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보기 위해 호텔 앞에서 기다리는 팬들을 조롱하는 글도 올렸다.
멤버들의 얼굴을 직접 찍은 사진 등 ‘글의 내용을 확정적으로 뒷받침할만한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 사진들이 유흥업소 종사자를 모집하는 현지 엑스(X) 계정에 옮겨지면서 루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 계정은 여성들이 올린 사진과 함께 “한국 아이돌 NCT 멤버 2명이 여성 3명과 성매매를 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날 오후 8시쯤 해당 계정은 “삭제 요청이 들어와서 게시물을 지웠다”고 했지만, 이미 캡처 사진이 일파만파 퍼진 후였다.
4일에는 한국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해당 글이 퍼졌다. 여전히 루머 속 상황이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소문은 국내에서 다른 주변적 사진 등이 보태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예컨대 지난달부터 6월 2일까지 일본에서 투어를 개최한 NCT가 현지에서 머무른 호텔과 여성들의 카드키 호텔이 일치한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사진을 올린 여성이 과거 NCT 콘서트 관람 사진을 올린 것도 하나의 증거처럼 동원됐다. 술자리 테이블 사진에 말린 종이들을 두고 마약 투약 의혹까지 불거졌다.
사실 아이돌 사생팬들 사이에서는 가수가 묵는 호텔 정보가 돈으로 거래된다. 그걸 알면 같은 호텔 예약도 가능하다. 루머에 보태진 메신저 대화 중 일부는 그저 유흥업소 종사자들 간의 대화였을 뿐이다.
유흥업소 종사자를 모집하는 에이전시가 ‘나랑 일하면 좋아하는 K팝 아티스트와 만날 수 있다’는 환상 심어주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루머를 믿는 이들에겐 그런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들은 이야기를 퍼나를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돌 문화에 관심 많은 10~20대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루머는 다양한 연령의 네티즌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번졌다.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남자 아이돌 멤버에 대한 사생활 의혹은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4일 오후 2시 30분을 전후로 SM엔터 주가는 가파른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때 9.75%까지 내려간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8.18% 하락한 8만1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문제가 될 만한 공시나 뉴스가 없던 상황으로, NCT 사생활 관련 지라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4일 밤 공식 입장을 내고 “현재 온라인상에 쟈니, 해찬의 성매매와 마약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자극적인 내용의 루머가 무분별하게 유포 및 재생산되고 있다”며 “확인 결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국적을 불문하고 선처나 합의없이 관련 행위자들을 법적으로 처벌받도록 할 방침”이라고 했다.
SM엔터가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힌 후 5일 온라인에서는 NCT 루머 관련 게시물을 찾기 어려워졌다. 글쓴이들이 자체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SM에서 루머 글을 퍼온 사람도 고소한 적 있느냐”며 걱정 섞인 질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주가 역시 반등에 성공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5일 오후 3시 기준 전날보다 5.01% 오른 8만6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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