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17)6년만에 열린 홍콩 와인엑스포 “한국 양조장 참가 환영"

박순욱 선임기자 2024. 6. 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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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30일, 홍콩에서 비넥스포 아시아 개최, 1000여명의 와인생산자 참가
비넥스포지움 로돌프 라메이즈 대표 “한국전통주 소개할 기회로 활용하길”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 참가…연일주류 정휘영 대표, 꼬망드리 와인기사 작위 받아
2024 홍콩 와인 아시아엑스포 행사 기간 동안에는 엄선된 프리미엄 와인을 한자리에서 시음할 수 있는 마스터 클래스 행사가 여러차례 열렸다. /비넥스포지움

“와인은 저마다 고유한 영역(소비처)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와인을 비롯한 한국 전통주들도 아시아 와인엑스포에 적극 참가해,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들과 당당히 경쟁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비넥스포 아시아 행사장에서 만난 비넥스포지움(와인엑스포 주간사) 로돌프 라메이즈 대표는 한국에서 멀지 않은 홍콩에서 열린 주류박람회에 한국 업체가 거의 참가하지 않은 사실을 아쉬워했다.

코로나 이후 중단됐던 아시아와인엑스포가 홍콩에서 다시 열린 것은 6년만이었다. 35개국 1032명의 와인(스피릿 포함) 생산자가 참가한 이번 홍콩 전시에서 한국 양조장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풍정사계로 유명한 충북 청주의 화양 양조장이 전통주 업체로서는 유일하게 부스를 차렸으며 프랑스 샴페인(골든 블랑)을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국내외에 유통하는 인터리커(대표 김일주)도 행사 기간 내내 샴페인 부스를 차리고, 시음객을 맞았다.

로돌프 라메이즈 대표가 홍콩 와인엑스포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여전한 가운데 열린 홍콩 아시아 와인엑스포는 6년만에 다시 열린 대회임에도 비교적 차분하게 행사가 진행됐다. 와인생산자 참가 숫자나,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이 행사는 일반인이 아닌 와인관련 종사자들만 입장할 수 있다) 수 역시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행사장이 전체적으로 부산스럽지 않아, 와인 시음과 비즈니스 상담하기에는 오히려 더 적합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아시아 와인엑스포 행사가 홍콩에서 처음 열린 것은 1998년이다. 현재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격년으로 아시아 와인엑스포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작년에 싱가포르 행사가 열린데 이어 올해는 6년만에 홍콩에서 다시 열렸다.

지난달 28일 열린 아시아 와인엑스포 개막식에서 로돌프 라메이즈 비넥스포지움 대표는 중국이 아시아 최대 와인소비시장이고, 중국시장의 관문이 올해 행사가 열린 홍콩임을 강조했다. “지구촌 곳곳이 정치, 경제 면에서 불안한 시점이고, 와인/스피릿 분야에서도 생산량 감소, 소비 감소 등 당면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아시아의 핵심 시장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홍콩에 다시 돌아왔다. 아시아가 와인/스피릿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며, 와인/스피릿 분야 역시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혁신할 것이란 전망을 갖고 있다.”

개막 행사 후 별도의 공간에서 로돌프 라메이즈 비넥스포지움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아시아 와인시장이 급성장했고, 그 중에 하나가 한국이었다”며 “중국 경제가 아직 그리 좋지는 못하지만, 코로나로 막혀있던 중국시장이 다시 열린 만큼, 홍콩이 중국시장을 여는 관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열린 2024년 와인 아시아엑스포 행사장에서 만난 비넥스포지움 로돌프 라메이즈 대표.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술 생산자들의 참가를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박순욱 기자

-한국에서 가까운 홍콩에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술 생산자들의 참여는 거의 없다.

“그점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와인 생산자들이 다소 겸손한 것 같다. 프랑스, 이탈리아, 캘리포니아와인과 못 겨룰 이유는 없다고 본다. 모든 와인은 자기만의 특별한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술들이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와인엑스포에는 한국 술 생산자들이 적극 참가했으면 한다. 전세계 주류 바이어들이 다 모이는 와인엑스포에서, 한국 술 생산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술을 소개하는 기회를 포착하길 바란다.”

홍콩에서 열린 2024 와인 아시아엑스포에서 한국술 중에는 유일하게 풍정사계를 생산하는 양조장 화양이 참가했다. /박순욱 기자

-한국와인을 마셔본 경험이 있는가?

“한국와인은 마셔보지 못했다. 대신, 한국 출장 때 소주를 마셔봤고 좀 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은 수입산 원료로 만드는 맥주와 소주가 한국 술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주류시장에서 와인의 비중은?

“프랑스도 맥주가 점유율 1위다. 그 다음으로 와인이고, 세번째가 스피릿(증류주)이다.”

-전세계적으로 와인소비가 주춤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좋은 질문이다. 와인 소비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지적은 다음의 세가지 요인을 먼저 짚어봐야 한다. 첫째, 기후변화다. 2023년은 와인생산이 가장 적었던 해였다. 기후변화는 주요 와인생산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두번째는 소비자 트렌드 변화다. 전세계적으로 ‘안티 알코올(술 소비를 줄이자는 소비행태)’ 바람이 일고 있다. 이런 추세는 와인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술을 찾는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어떤 소비자는 도수가 낮은 와인을 찾고, 심지어 무알코올 와인을 찾기도 한다. 이런 추세에 맞게 와인을 비롯한 술 생산자들도 능동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술에 다 해당되는 것이지, 유독 와인만 소비자 트렌드 변화로 인해 침체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24 와인 아시아엑스포 행사 기간 동안에 열린 칠레 최대 와인생산기업인 콘차이토로 신제품 'JEWELS' 런칭행사. 콘차이토로는 디아블로를 비롯해 한국 칠레와인 시장 30~40%를 차지하고 있다. /아영FB 제공

세번째는 정치경제적인 요인이다. 예를 들면, 중국과 호주간에 정치적 이슈로 관세 벽이 높아졌다든지, 미국과 일본의 무역 마찰로 제재가 강화된 사례가 있는데, 국가간 이슈로 와인소비가 일시적으로 주춤하는 때가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꼬냑과 브랜디 수입이 크게 줄어든 적이 있는데, 그 원인에는 세금 문제가 컸다.”

-와인시장 침체를 극복할 방안이 있나?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우선 와인 생산자와 와인 판매자가 힘을 합해 와인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소비자들이 인식하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소비자 트렌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세번째는, 와인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일자리 창출, 세금 납부)을 정부 기관에 적극 어필해야 한다.”

-요즘 와인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 만한 것은?

“내추럴 와인, 바이오 와인 같은 추세는 모든 와인 생산자들이 점점 친환경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저알코올 와인 생산이 늘고 있는 점이 최신 트렌드인 것 같다. 심지어 레드 와인도 알코올 도수 12~12.5도의 와인과 14.5~15도 와인 등 알코올 도수에 편차가 꽤 나는 것을 보면, 점점 저알코올 와인시장이 커지고 있다. 무알코올 와인도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작년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아시아엑스포 미팅’이라는 행사명으로 미니 와인엑스포가 열렸다. 11개국 30여개 와인생산자가 참가했다. 한국에서 아시아 와인엑스포가 열릴 가능성이 있는가?

“와인엑스포는 메인 대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는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는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인도에서도 개최되고 있다. 이제는 이미 벌여놓은 행사에 더 집중을 할 때다. 당분간 한국 개최는 어렵다고 본다.”

홍콩 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열린 올해 아시아 와인엑스포 행사는 개막 전날인 27일 낮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프랑스 유명 와인평론가인 베딴, 드소브 두 사람이 엄선한 와인들로 구성한 ‘그랜드 테이스팅’ 행사가 27일 오후 2시부터 열린 것을 비롯해 전시 기간 동안 감베로 로쏘(Gambero Rosso), 리델(Riedel), 샤또네프 뒤 파프, 캘리포니아와인협회 등 다채로운 와인 마스터 클래스가 곳곳에서 개최됐다. 마스터 클래스는 별도의 큰 공간에서만 열리는게 아니었다. 크고 작은 와인 부스를 차린 와인 생산자들이 10여명의 인원만 참가하는 미니 마스터 클래스도 자주 열었다. 특히, 같은 브랜드의 와인을 빈티지(생산에 쓰인 포도 수확연도)만 다른 와인을 시음하는 ‘연도별 테이스팅’ 행사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 관련 행사도 있었다. 아시아 최초의 ‘마스터 오브 와인(MW)’인 와인평론가 제니 조 리(Jeannie Cho Lee)는 ‘한국 와인시장을 열다’라는 주제로 한국 와인시장을 조망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 행사의 한 발표자는 “한국 전체 와인시장은 다소 주춤하지만, 샴페인을 비롯한 프리미엄 와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트와인의 한국시장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까지 나올 정도로 이날 세미나장은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이 참석했다. 한국 와인시장에 대한 해외 와인생산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홍콩 와인 아시아엑스포 행사 기간에 열린 한국 와인시장 설명 세미나. /박순욱 기자

한국 전통주 업체로서는 유일하게 풍정사계 화양 양조장이 부스를 차렸다. 풍정사계 중 약주인 ‘춘’은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비롯해, 국빈 만찬주로도 선정된 한국전통주를 대표하는 술 중 하나다. 사계절을 닮은 술 춘(약주), 하(과하주), 추(탁주), 동(증류주) 4종(풍정사계)과 녹두가 들어간 누룩으로 만든 소주 향온이 주력 제품이다. 화양 이한상 대표의 부인인 이혜영 이사가, 딸, 아들과 셋이서 부스를 찾아오는 시음객들을 맞았다. 이혜영 이사는 “해외 전시회는 처음 참가하는데, 풍정사계를 맛보겠다는 관람객들이 꽤 많았다”며 “앞으로는 우리 말고도 한국 술 양조장들이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 홍콩 와인 아시아엑스포에 참가한 골든 블랑 부스. 골든블랑은 한국 주류기업 인터리커가 프랑스에 주문자생산방식으로 만든 샴페인이다. /박순욱 기자

한국에서 생산하지는 않지만, 국내 기업이 브랜드를 소유한 샴페인 ‘골든블랑’도 부스를 차리고 시음객들에게 샴페인을 맛보여 주었다. 골든 블랑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에서 주문 생산해, 한국기업 인터리커(대표 김일주)가 이름을 붙여 유통하는 경우다. 유통은 현재 한국 내에서 거의 이뤄지지만, 일본,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도 한다. 인터리커 이성호 팀장은 “한국 주류기업이 샴페인 브랜드를 소유,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는 골든블랑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출시된 골든블랑은 샴페인 9종, 크레망 2종, 스파클링 와인 4종 등 모두 15종의 와인이 나오고 있다.

2024 홍콩 와인엑스포 행사 기간 동안 열린 꼬망드리 기사작위 수여 행사에서 연일주류 정휘영 대표가 꼬망드리 와인기사 작위를 받았다. /연일주류

이밖에 프랑스보르도와인협회가 주관한 꼬망드리(Commanderie) 와인기사 작위 행사도 전시기간 도중에 열렸다. 꼬망드리 와인 기사 작위는 쥐라드 드 쌩테밀리옹, 슈발리에와 함께 프랑스 3대 와인기사 작위로 손꼽힌다. 이날 행사에서 한국의 연일주류 정휘영 대표가 꼬망드리 기사 작위를 받았다. 정 대표는 “20년전 선친이 받으신 꼬망드리를 아들인 제가 이번에 받아, 영광이 2대째 이어졌다”고 말했다.

2025년 아시아 와인엑스포는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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