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 14세기 흑사병과 달라...진짜 두려운 건 따로 있다"[인터뷰]
한국 인구 진짜 문제는 '규모' 아닌 '속도'
"여성·노인 경제 활동 늘려 충격 줄여야"
지난해 4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5명. 인구 집계 이후 처음으로 0.7명의 벽이 무너졌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낮은 수치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인구 감소가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한다"는 내용의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인구 절벽'을 넘어 '국가 소멸', '민족 멸종' 등 무시무시한 문구가 난무하며 공포감이 고조되는 것을 보다 못한 학자가 입을 열었다. "인구 감소가 한국을 결코 멸망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최근 첫 대중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를 낸 이철희(59)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인구 감소 추이를 보면 우려되는 지점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어떤 미래가 될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고, 분명한 건 손쓸 수 없이 당했던 14세기 흑사병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규모보다 중요한 건 삶의 질"
이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인구 경제학자로 꼽힌다. 20년 전 처음으로 '인구와 경제' 과목을 개설해 강의를 해왔고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센터장을 맡고 있다. 30년간 한국의 인구 감소 추이를 살펴온 그는 합계출산율이 자극적인 소재로 변질되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자극적인 분위기가 비이성적인 대책을 부른다는 이유에서다. "출산율이 감소한다는 건 자녀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사회라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징후죠. 병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증상만으로 성급한 예단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합리성을 결여한 특단의 대책들이 지금보다 훨씬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인구 감소를 전제로 한 각종 디스토피아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가 책에서 서술한 바에 따르면,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농노제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제도를 붕괴시켰을 뿐 사회와 경제를 몰락시키진 않았다. 오히려 인구 감소가 자원과 인구 간의 균형을 바꾸면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였다.
"인구 감소는 적응의 문제...전략 짜야"
축소 사회가 정해진 수순이라면, 무엇에 눈을 돌려야 할까. 이 교수는 인구 정책의 목표를 '인구 규모 유지'가 아닌 '공동체의 행복 증진'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인구 감소의 속도를 주시하면서 촘촘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감소가 급격히 진행될 시기는 2072년이다. 인구는 현재 5,000만 명대에서 3,000만 명대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저출생 대책도 중요하지만, 노동인구 감소를 감안해 사회가 적응할 수 있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구별 경제활동참가율과 생산성 변화를 고려해 노동 투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며 "산업, 직종, 나이, 학력에 따른 노동 공급 변화와 노동 수요 변화를 고려한 산업·직종별 노동력 부족 규모 등을 따져서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대 증원 정책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2050년까지 더 필요한 의사 수는 2만2,000명에서 3만 명 정도로 집계되는데, 이걸 고려해 정책 논의가 시작됐죠. '인구적 관점'이 정책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어요."
노동 인구 축소에 대응할 다양한 방법론을 연구해 온 이 교수는 해법의 한 갈래로 노인·여성·중장년층 노동참여 활성화와 외국 인력의 적절한 이용을 제시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한국이 가장 낮은 수준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크게 끌어올리면 노동인구 감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인구 감소가 위기를 부를 수 있지만 정확한 분석을 기반으로 이에 맞는 인구 정책을 펼치면 아주 어두운 미래는 아닐 수 있어요. 정말 무서운 건 인구 감소 자체가 아니라 준비 없이 변화된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피할 수 없다면 준비해야죠."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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