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3인조 수퍼플렉스 "세상의 종말보다 자본주의 종말 상상하기 더 어려운 세상”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2024. 6. 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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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서 5년 만의 서울 개인전
‘Fish & Chips’ 페인팅, 조각, 영상 전시
기후·경제 시스템 관계성 다룬 작품
국제갤러리 K1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흰 색 캔버스가 걸린 전시장, '단색화'전은 아니다.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의 'Chips'라는 작품으로, 모두 흰 색으로 칠해졌지만 K 단색화처럼 정신이 담긴 것이 아닌, 지배적인 경제학의 논리가 담겼다.

“세계의 종말보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 더 어려운 세상이다.”

국제갤러리 K1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4일 국제갤러리에서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가 흰 공간으로 이뤄진 'Chips'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024.06.04.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 회화는 일곱 겹의 흰색 레이어로 칠해져 있는데 매우 미세한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용카드의 마이크로 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을 확대한 모습입니다."

벽면의 흰색 회화 작품들이 둘러싼 전시장 한 켠 에는 세라믹 조각인 '투자은행 화분(Investment Bank Flowerpots)' 연작 중 한 작품(2019)이 놓였다. 골드만삭스, 도이치은행, 시티그룹, JP모건 체이스 등 세계적 규모의 투자은행 본사 건물을 모델로 제작한 꽃병 같은 작품은 금융 거래의 중독적인 면모를 은유한다. 그래서 환각을 유발하는 식물(산 페드로 선인장, 페요테 선인장, 마리화나 식물 등)을 꽂아 둔다.

이번 전시에는 시티그룹 건물을 본뜬 모형으로 제주도를 비롯한 한국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독성 식물인 협죽도가 심어져 있다.

수퍼플렉스는 자본의 불균형, 이주 문제, 저작권 문제, 소유의 문제 등을 주제로 세상의 불합리함에 의문을 품고 그 근원을 파헤친 작품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전시 이후 5년 만에 서울에서 펼친 수퍼플렉스 개인전은 괴짜 작가 그룹이라는 유명세 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독특한 페인팅, 조각, LED 텍스트 설치작품, 인터랙티브 영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기후와 경제 시스템 사이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동시에, 도래하는 전 인류적 위기에 대한 잠재적 해결 방안으로 공생적인 생태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수퍼플렉스 1관 전시장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s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1관 전시장의 바깥쪽 공간은 분홍색 방으로 꾸며졌다. 'Save Your Skin', 'Make a Killing', 'Hold Your Tongue'라고 쓰여진 영자 문자가 맞이한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분홍빛의 LED 글자들은 경제적인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신호로 작용하는 한편, 인간중심적인 욕망을 확대적으로 보여준다.

어두운 전시장을 메운 짙은 분홍빛 조명은 경제적인 시스템의 붕괴를 암시하는 듯한 매혹적이고도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전시의 서두를 연다.

국제갤러리 K3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 3관은 경제적인 비평에서 생태학적인 영역으로 전환한 조각과 영상을 선보인다.

모듈 형태의 천연석들로 이루어진 조각들은 인류세 시대 너머의 시간에 인간과 해양 생태계 모두의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수면 아래의 기반 시설에 대한 작가들의 관념적인 상상을 담아냈다.

국제갤러리 K3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를 위해 선별된 조각들은 작가들이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를 내포한 거대한 어망처럼 보인다”고 묘사한 3관 건물의 구조와도 조형적 대화를 이룬다.

조각과 함께 거대한 LED 화면의 인터랙티브 영상이 눈길을 끈다. 컴퓨터로 제작된 수중 해파리의 친척인 해양 생명체인 사이포노포어(siphonophore)가 작아졌다 커졌다 한다. 화면에 마주한 관람객을 따라 확장한다.

"다른 종과의 긴밀한 관계성을 조명하고자 한 작가들의 의도로, 사이포노포어와의 상호작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수퍼플랙스 인터랙티브 영상(Vertical Migration).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재판매 및 DB 금지

"매일 밤 먹이를 찾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수조 마리의 바다 생물들처럼, 다가오는 미래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들도 ‘수직 이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수퍼플렉스는 "이 영상에 인류와 해양 생명체 사이의 공통된 운명을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인터랙티브 영상(Vertical Migration)은 ART 2030과 TBA21-아카데미의 커미션으로 제작되어 2021년 열린 제 76회 유엔 총회에서 유엔 사무국 건물 파사드의 프로젝션으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전시는 7월28일까지.

수퍼플렉스 작가 Studio Visit 링크: https://youtu.be/3Av95Eyp4Vk 영상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수퍼플렉스?

1993년 야콥 펭거(Jakob Fenger),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Bjørnstjerne Christiansen),라스무스 닐슨(Rasmus Rosengren Nielsen)이 설립한 3인조 컬렉티브 그룹이다. 자신들의 작업을 매개로 사람들로 하여금 범세계적 담론에 대한 예술적 고민들에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이들이 예술을 통해 지향하는 것은 집단지성 ‘컬렉티브의 힘’이다.

작품은 덴마크 아르켄 현대미술관과 미국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마이애미 페레즈 아트 뮤지엄 등이 있다.

2019년에는 한국과 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 '집단'의 잠재력과 ‘협업’의 중요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3인용 모듈식 그네 작품 '하나 둘 셋 스윙!(One Two Three Swing!)'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2023년 통일부에 영구 기증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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