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에 보증금 지급 판결…주택도시보증공사 항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을 대신해 임차인(세입자)한테 보증금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자 임차인 등이 반발하고 있다.
5일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 피해자 정아무개(33)씨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에 사는 정씨는 2021년 6월 20여㎡ 규모의 빌라를 보증금 1억4500만원을 주고 2년 동안 사용하는 전세계약을 하고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를 받았다. 임대차계약서에 임대보증금보증 가입 조건을 넣었다.
임대보증금보증은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는 일종의 금융상품이다. 임대인이 부도 등으로 보증금을 임차인한테 돌려주지 못할 때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가 먼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 주고 나중에 임대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서 보증금을 회수한다.
정씨가 사는 빌라 소유자인 임대인은 2022년 12월에야 허그로부터 임대보증금보증서를 받았다. 이때 허그는 정씨한테 ‘보증금 전액을 보증한다’고 문자로 통보했다. 지난해 6월 정씨와 임대인의 계약은 묵시적 합의로 2년 더 연장됐다. 그런데 8월 허그는 정씨한테 “임대보증금보증이 취소됐다”는 문자를 보냈다. 임대인이 부채와 보증금 합계가 건물 가치를 초과해 임대보증금보증에 가입하기 어려워지자 보증금 액수를 줄인 계약서를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보증금을 떼일 것을 우려한 정씨는 9월 임대인한테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보증금 지급을 요구했다. 임대인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주택담보대출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실제 매매가에 가깝거나 더 많은 주택을 뜻하는 이른바 깡통주택 199채를 이용해 정씨를 포함한 임차인 149명한테 보증금 183억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았다.
정씨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에 정씨는 10월 허그와 임대인을 상대로 임대보증금지급 청구소송을 냈다. 허그는 “허그와 임대인의 약정서에는 허위 서류를 제출해 임대보증금보증서를 발급받았다면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데다 정씨가 임대보증금보증 취소통지를 받은 뒤 임대차계약을 합의해지했으므로 허그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정씨는 “임대인이 임대보증금보증에 가입하는 것을 전제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임대차계약서에도 임대보증금보증을 특약사항으로 넣었다. 보증계약이 체결된 것을 신뢰해서 임대차계약을 묵시적으로 갱신했다. 임대인의 허위 서류 제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되받았다.
최지경 부산지법 동부지원 판사는 지난달 28일 “피고들(허그와 임대인)은 연대해서 원고(정씨)한테 1억4500만원을 지급하고 소송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최 판사는 판결문에서 “임대보증금보증계약은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때 지급을 보증하는 것이다. 허위 서류 제출 등으로 임대보증금보증이 취소됐다고 하더라도 피보험자(정씨)가 임대인의 기망행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보험자(허그)가 피보험자한테 대항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허그는 지난 3일 항소했다. 허그는 “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적지 않은 액수이고 집주인의 허위서류를 검증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이유도 있기 때문에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 한다”고 밝혔다. 정씨는 “1심 판결은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라면서 항소한 것은,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것과 동일하게 들린다. 누구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고 법원등기소 확정일자와 임대인이 제출한 확정일자를 비교하면 임대차계약서 허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허위서류를 검증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같은 내용의 다른 소송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허그는 “임대보증금보증이 취소된 99가구 가운데 72가구가 보증금 100여억원을 임대인을 대신해 지급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허그가 모두 패소하면 100여억원을 임차인들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어서 책임자 문책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보증금을 안전하게 되돌려 받으려면 전세권등기설정을 하거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서 또는 임대보증금보증서를 받으면 된다. 전세권등기설정은 임차인이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 법원에 신청한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임차인이, 임대보증금보증은 임대인이 허그에 신청한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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