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이혜영, 쌤보다는 언니라 부르고 싶은 '멋짐'의 의안화

아이즈 ize 한수진(칼럼니스트) 2024. 6. 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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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칼럼니스트)

사진=MBC

그녀는 초록색 스포츠카를 몬다.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라 불리는 홍사강(이혜영), 유복한 집에서 나고 자랐고 남편은 검찰총장을 지냈다. 아들 부부는 평판 좋은 의사다.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조건을 지닌 사강. 하지만 그런 그의 삶에도 부침이 존재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람을 피워 댄 남편에 이어, 아들도 내연녀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서 가죽 재킷을 즐겨입는 사강의 모습은 자신을 둘러싼 위협을 지키기 위해 갑옷을 두른 것처럼 보인다.

한때 자신을 보좌하던 박강성(안길강)과 재회하던 순간에도 우아하게 옥수수 국수를 먹는 사강의 모습은 기품 있고 그들 사이의 상하관계는 뚜렷하다. 강성이 옥수수 국수 집을 차리게 된 배경도 사강이 과거 옥수수 국수를 맛있게 먹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남편 최고면(권해효) 앞에서는 좀처럼 불쾌한 감정을 누르지 못한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홀로 토스트를 먹는 사강의 의도는 남편을 향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남편이 사고로 죽자 음악을 틀어놓고 서재에서 춤추는 사강의 모습은 강렬하다.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정열적인 춤사위로 남편의 짐을 쓰레기통에 쳐박는다. 열락이 차오른 사강의 몸짓은, 의뭉스러움을 담고 있는 이 장면을 놀라울 만큼 흥미롭게 만든다. MBC 금토드라마 '우리, 집'(연출 이동현 위득규, 극본 남지연)의 이혜영은 또다시 여성 서사의 진일보한 걸음을 보여주는 중이다.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위트 한 스푼을 얹은 채. 

사진=MBC

이혜영의 아버지는 유명 영화감독 이만희였고, 어머니는 배우였다. 그의 삶에 연기란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데뷔와 동시에 연기력에 관해선 늘 칭찬만 받아온 그다. 고등학교 3학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1981)으로 데뷔한 이혜영은 43년 동안 카메라 앞과 무대 위에 머물렀다. 60세가 되던 지난 2022년에는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배우로서 꾸준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키운 이혜영은 '여성 서사'의 상징같은 배우가 됐다. 

이혜영은 2011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청초'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로 "남에게 민폐 안 끼치고 스스로 잘 해결하고 슬기롭고 지혜 있는 여자 얼마나 맑고 깨끗해요? 그거야 말로 청초 아니겠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이 말을 뱉던 시절만 해도 극에서 남자주인공에게 기대고 주변에 민폐 끼치는 여자주인공이 허다했다. 그래서 이 발언은 그가 삶을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을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보다 여성상에 대한 관점이 확대된 오늘날 한국 작품에서 이혜영의 오랜 사유는 대중이 사랑하는 폼이 됐다. 시대를 앞서 간 '여성 서사'의 든든한 왕언니라 할 만하다.

사진=MBC

오랜 사유를 지켜오며 자신의 궤적을 밟아온 이혜영이기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끝내주게 청초하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자립심 있는 여자로, 끊임없는 모험과 함께. 여전히 섹슈얼한 이혜영의 모습은 그의 젊은 시절을 톺아본다면 더욱 흥미롭다. 데뷔 때부터 이혜영은 개성이 강했고, 그래서 단번에 대중의 눈에 들었다. 가느다랗게 위로 찢어진 두 눈은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품었고, 우아하게 발성되는 목소리는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도 군살하나 없는 몸매지만 과거 역시 완벽한 태를 지니고 있었다. 외관이 주는 힘마저 여태껏 놓지 않으며 연기에 활용하는 그다.

이혜영은 인상이 무섭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무난한 역할에 가둘 수 없는 배우로 만들었다. 영화평론가 정영일은 영화 '겨울나그네'(1986)에 출연한 이혜영에 대해 "올해의 발견은 이만희의 딸 이혜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혜영에게 첫 트로피인 백상예술대상 신인여우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영화 '여왕벌'(1986)에서 연기한 미희도 특별했다. 미희는 첫사랑의 실패에 주저앉기 보다 다른 여자를 보호하며 대신 복수했다. 그래서 이혜영에게는 여배우에게 흔히 수식되는 '예쁘다', '아름답다'가 아닌 '멋있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사진=MBC

이혜영은 눈빛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여기에 세월이 이혜영에게 선물해준 관록은 그의 태를 더욱 그윽하게 만들었다. 2011년 MBC '내 마음이 들리니' 이후 7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tvN '마더'(2018)에서 그의 딸로 출연한 배우 이보영은 "이혜영 선생님이 대본 속 모습보다 더 엄마처럼 연기해서 제가 나쁜 딸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사랑해주는 엄마한테 나는 왜 마음을 못 주는 건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대역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경지. 그것이 이혜영의 연기 능력치다. 그가 연기한 배역들에 대한 대중의 납득과 몰입은 당연히 따라온다. 이혜영은 결코 만만치 않은 여자에서 엄마로, 또는 두 가지를 모두 담아내며 자신을 전진시켰다.   

영화 '앵커'(2022)나 드라마 '마더', '킬힐'(2022) 그리고 현재 출연 중인 '우리, 집'까지 여성 서사로 전개되는 극에서 이혜영은 언제나 든든하게 자리한다. '우리, 집' 사강으로는 위트까지 더했다. 자신의 웹소설에 달린 악플에 미간을 찡그리며 화내는 사강의 모습은 묘하게 귀엽다. 강성과 일을 꾸밀 때 주고받는 긴박한 제스처도 의외의 사랑스러움을 드러낸다. 파우더를 이용해 남의 집 비밀번호를 알아냈을 때 "나 한국의 아가사 크리스티"라며 자찬하는 모습은, 긴장되는 상황과 생뚱된 억양만큼이나 이혜영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43년을 지나 그의 연기를 더 오래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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