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PD 사정은 이해하지만 굳이 이럴 필요 있었을까('지락이의 뛰뛰빵빵')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6. 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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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치가 컸기에 5% 아쉬운 ‘지락이의 뛰뛰빵빵’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무언가 삶에 환기나 전환이 필요할 때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을 꺼내 본다. 정확히 말해 감독판을 본다. 이런저런 비즈니스 논리나 사정상 담지 못했던, 혹은 내부 설득이 어려웠던 일반판과 별도로 창작자가 구상했던 그림을 펼쳐낸 버전이 바로 감독판인데, <킹덤 오브 헤븐>의 경우 일반판과는 아예 다른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에는 감독판과 함께 확장판이란 개념이 있다. 감독판이나 확장판이나 없던 장면들이 들어가다 보니 러닝타임이 늘어난다는 공통점은 같다. 그런데 의도와 주체가 다르다. 감독의 연출 의도를 살리기 위한 감독판과는 달리 확장판은 IP활용 혹은 시리즈 다음 편의 흥행을 위한 제작사 주도의 마케팅 등 비즈니스 논리가 탄생의 주된 동기다. 그래서인지 감독판에 비해 호응과 반향이 적은 편이고 '굳이'라는 반응이 따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지의 제왕> 확장판이다.

tvN <지락이의 뛰뛰빵빵>은 <뿅뿅 지구오락실> 시리즈의 스핀오프이면서, <채널 십오야>에서 발아된 웹예능 기획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확장한 버전이다. <지락실>에 대한 반가움과 기대가 살아 있고, 안유진, 이영지를 비롯한 멤버들 뿐 아니라 나영석 PD와 4세대 PD 등 제작진 또한 한창 주가를 올리는 시기에 모여 만들어낸 싱싱한 샐러드 같은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맺어진 신뢰와 친밀함도 너무나 든든하다. 600만이 넘는 채널 십오야의 '구독이'들이 티저를 보며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입소문(바이럴), 화제성 면에서도 압도적인 화력을 등에 업고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여행은 정신없는 캐릭터도 그대로고 왁자지껄한 바이브도 여전한데 뭔가 늘어진다. 처음 떠난 국내여행이라 보는 내가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건가 의심도 했지만 원인은 확장에 있었다. 특히 1화의 경우 초보 운전의 위태로움과 음악을 타는 자유분방함 등 티저로 접했던 장면의 앞뒤에 디테일과 과정이 세세하게 더해졌는데, 그 상세함이 꼭 재미를 증폭시키는 건 아니었다.

<지락실>은 <신서유기> 시리즈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같은 금형으로 찍었는데 다른 성형품이 나왔다는 게 포인트였다. Z세대가 리얼버라이어티를 즐기는 방식은 꽤 신선했다. 놀라운 재능과 당당한 태도, 편견 없고 긍정적인 마인드, 평등한 문화는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볼 수 없던 그림이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극한 대결구도라든지, 메인MC를 구심점으로 두고 이뤄진 형님 관계망, 이전투구의 복불복, 샌드백 역할 캐릭터 등 기존 방법론과 노하우가 무용했다. 역시나 감도가 뛰어난 제작진은 주파수를 재빠르게 바꿔 새로운 리얼함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개인기와 조직력이 동시에 필요한 랜덤플레이 댄스로 상징되는, 또래집단의 흥과 에너지로 이뤄진 그야말로 '새로운 세대'의 예능이 탄생했다.

이런 성공을 거둔 이후 어느 날, <지낙실> 멤버들이 짬을 내 힐링 여행을 떠난 <지락이의 뛰뛰빵빵>은 일종의 '합방' 이벤트에 가깝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던 이들이 모인다. 실제로 프로그램 빌드업 과정은 구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유튜버, 스트리머의 방식에 가까웠다. 멤버들은 각자 채널 십오야에 이런저런 이유로 연결되었고, 면허취득 과정을 공유했고, 작아진 스케일, 짧아진 스케줄을 극복하는 방법론으로 기존 제작 문법과 제작진의 눈을 대신해 여행 계획은 물론 영상까지 멤버들이 직접 찍기로 했다. 웹예능의 문법과 정서 위에 새로운 세대의 재능들을 세우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기발한 재미와 그림을 만들어낼지 지켜보는 것이 기획의 출발이었다. 프로그램 내 서사를 구축하는 데도 자유롭고, 짧아도 되는 웹예능이다보니 방송 작법으로는 담지 못했던, 리얼한 관계와 친밀한 바이브가 기대됐다.

그런데 방송으로 확장되면서 이 기획 의도는 옅어졌고, 스핀오프라기보단 <지락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여행 유튜버처럼 여행을 담아오면 <지락실>과는 또 다른 어떤 모습이 나올까가 관전 포인트였는데 장소만 발리나 유럽이 아니라 가평으로 바뀐 <지락실>이다. 물론, 여전히 왁자지껄하고, 놀랍고, 사랑스럽지만 빈 구석을 긴 장면으로 메운다. 성과도 컸고, 기대도 높은 만큼 초보운전의 성장기와 우애를 확인하고 다지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다소 약하다.

춤을 잘 추는 것 알고, 이영지의 에너지 레벨을 비롯한 멤버들의 특성과 재능 모두 너무나 인정이다. 어떤 플레이리스트에도 바로 반응해서 칼군무 합을 맞추는 흥과 재능,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조화로운 캐릭터쇼는 불편한 구석이 없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역시나 춤으로 웃음을 예열한다. 이런 익숙한 반가움만으로도 재미가 보장된다. 그런데 <지락실>만의 특징이자 인기의 이유인 의외의 발견, 예상치 못한 번뜩이는 재미가 이번엔 뭔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춤캉스, 배드민턴 대결, 함께 밥 먹는 장면, 운전 상황, 이영지가 준비한 게임 등등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닌데, 길게 느껴지고 반복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슨 맛인지도 잘 알 것 같고,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대용량으로 끓인 라면을 먹는 기분이랄까. 기대한 익숙한 맛에서 5% 정도 모자란 만족도다. 초기 기획대로 웹예능으로 힘줄 상황과 장면 장면만 임팩트가 있게 나왔다면 기대를 넘어선 어떤 경지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웹예능 기획을 확장한 방송을 보면서 '굳이'라는 아쉬움의 입맛을 다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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