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무현에게 ‘언론사 세무조사’ 메모를 건네다

박찬수 기자 2024. 6. 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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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의 DJ 국정노트 (21)
16대 대선 나흘 만에 노무현 당선자와 오찬
‘인수인계 사항’ 담은 국정노트 써 직접 설명
노 “언론과 싸울 땐 싸워야” 발언 논란 일자
DJ “그 사람 아니면 누가 그런 말 하겠나”
2001년 6월20일 서울 종로2가 국세청 기자실에서 손영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2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세청은 23개 언론사와 일부 사주가 5년간 1조3600억원의 소득을 누락시킨 사실을 적발해, 총 5056억원의 탈루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자료사진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대선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지 나흘 뒤인 2002년 12월23일,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노 당선자와 오찬을 함께했다. 국정 인수인계를 위한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만남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국정 현안을 노트에 깨알같이 적어서 1시간30분 동안 노무현 당선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주요 국정 현안’이란 제목이 붙은 메모는 주로 외교·안보 이슈를 담고 있다. 북한 핵 개발로 위기가 높아지는 한반도 상황과 주변 강국들의 입장을 김대중 대통령의 경험을 토대로 자세하게 적었다. 국내 현안에 대해선 “노 당선자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필요하면) 장·차관과 수석비서관이 언제든지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다만, 한가지 사안에 대해선 별도 항목으로 노 당선자에게 자기 생각을 전했다. 바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한 내용이다. ‘세무사찰의 정당성’이란 제목이 붙은 메모의 내용은 이랬다.

<세무사찰의 정당성>

1. 국민과 언론인의 압도적 지지
2. 모든 언론기관의 탈세 처리 예외 없었다
3. 세무사찰 이후 더 한층 비판의 소리 커져
4. 탈세만 취급. 관료의 언론개혁 입법 주장 거절

김 대통령이 국내 현안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유독 언론사 세무조사만 국정노트에 적은 건 의미심장하다. 2001년 진행한 언론사 세무조사가 그만큼 무겁게 김 대통령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사상 초유의 중앙언론사 세무조사는 3개 언론사 사주의 구속으로 이어지며 언론 특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보수 언론의 공격이 격렬해지면서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심화시킨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짧은 메모에선 그런 양가적인 대통령의 심정이 묻어난다.

김 대통령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국민과 언론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세무조사가 정당한 법 집행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2001년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모든 기업에 5년마다 실시하게 되어 있는 정기 세무조사의 일환이었다. 언론사도 기업인 이상, 예외일 수는 없었다.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반드시 한번은 모든 언론사에 세무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언론사의 정기 세무조사를 면제해줬다. ‘권언 유착’이란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였다.

2002년 12월23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당선자와의 오찬에서 설명한 국정 인수인계 내용을 담은 메모 첫째 장. 메모엔 북한 핵 문제와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 등 외교·안보 현안이 주로 적혀 있다. 국내 현안 중에선 유일하게 ‘언론사 세무조사’만 언급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김 대통령이 작성한 국정 인수인계 노트 중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한 대목. ‘세무사찰의 정당성’이란 제목이 이 사안을 보는 김 대통령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는 1994년 언론사 세무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무조사를 한 사실 자체가 비밀에 부쳐졌고, 언론사에 영향을 줄 만한 세금 부과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2월 김영삼 전 대통령 발언으로 국민에 알려졌다. 와이에스(김영삼의 애칭)는 도쿄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평생의 라이벌인 디제이(김대중의 애칭)의 언론사 세무조사 실시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대중 정부가 돌아오지 못할 무덤을 파고 있다. 중요한 건 정치보복에 맞서는 언론의 용기로서, 위축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에 언론사 세무조사를 했던 사실을 그만 언급하고 말았다. “당시(1994년) 조사결과를 보니, 언론사주의 재산과 개인적인 비리 등이 대거 포착됐다. 이를 공개했다면 언론의 도덕성에 영향을 끼쳐 (언론) 존립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탈세한 세금 또한 국세청에서 얼마 물리자고 하는 걸 내가 많이 깎아 적당한 선에서 내도록 했다”고 말했다. 디제이를 비판하고 보수 언론을 도와주려다, 되려 ‘세무조사는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하는 보수 언론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이 발언은 세무조사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해줬고, 김 대통령이 국정노트에 적었듯 언론사 세무조사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조차 “김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이후 느닷없이 세무조사를 하는 것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무조사를 중단하라고 한다면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세무조사는 2001년 1월31일 국세청이 “중앙언론사를 대상으로 정기 법인세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1월1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지 20일 만의 일이었다. 김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언론자유는 지금 사상 최대로 보장돼 있다. 언론도 공정보도와 책임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 국민과 일반 언론인 사이에도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다. 언론계와 학계·시민단체·국회가 합심해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대상은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에스비에스(SBS) 등 23개 중앙언론사였다. 한겨레·경향신문·내일신문 등 진보 성향 언론사도 모두 포함됐다. 국세청은 그해 6월20일, 132일 동안 실시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일보 864억원, 중앙일보 850억원, 동아일보 827억원 등 23개 전 언론사에게서 총 5056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도 11억6천여만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김 대통령이 국정 메모에 쓴 ‘모든 언론기관의 탈세 처리 예외 없었다’는 그런 의미였다.

보수 신문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언론 목줄 죄기’라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성명서에서 “비판 언론을 압살하려는 권력의 음모다. 권력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문사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오만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노트 메모를 보면, 김 대통령은 철저하게 이 사안을 ‘모든 기업에 실시하는 정기 세무조사의 일환이다. 언론 기업도 예외 아니다’라는 인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탈세만 취급. 언론개혁 입법 주장 거절’이란 메모 내용이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 김 대통령이 메모에서 ‘언론개혁 필요성’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세무사찰의 정당성’이란 소제목을 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나흘만인 2002년 12월2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가 국정 인수인계를 위한 만남을 가졌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에게 설명해줄 국내 현안은 경제, 사회 등 무수히 많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왜 언론사 세무조사 하나만 뽑아서 노무현 당선자에게 얘기했을까. 여기엔 김대중이 노무현에게 가진 동병상련의 마음이 담겨 있다. 16대 대선은 선거 전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깨지면서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이었다. 만약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돼 김 대통령과 마주 앉았더라면, 인수인계 노트의 내용은 달라졌을 것이다. 민주당 후보가 노무현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아마 디제이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싸우면서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선자를 높게 평가했다. 국정 메모에 굳이 ‘언론사 세무조사’ 항목을 집어넣은 이유일 터이다.

박지원 의원(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이 언론사 세무조사 직후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두고 김 대통령과 나눴다는 대화 내용은 흥미롭다. 국세청이 중앙언론사 세무조사에 들어간 직후였다. 노무현 장관은 출입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언론이 더는 특권적 영역이 아닌 만큼 세무조사를 받을 때는 받아야 한다. 언론이 대통령보다 더 무섭지 않았냐”고 말했다. 기자가 ‘언론과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고 묻자 노 장관은 “못할 거 뭐 있느냐”라고 답했다. 노 장관은 나중에 “이 말은 권력이 언론과 전쟁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개인이나 정치인이 너무 언론에 굽실거리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노무현 장관, 언론과의 전쟁 불사해야’라는 제목으로 이를 크게 부각시켰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과의 전쟁이란 목표와 시나리오를 갖고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기획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하며, 노무현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청와대로선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박지원 의원은 김 대통령에게 “제가 노 장관을 만나서 (수위 조절을 하라고)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디제이는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라도 그런 말을 해야지. 노 장관 아니면 누가 그런 말을 하겠어요?”라며 막았다고 박 의원은 밝혔다. 박 의원은 “디제이한테 딱 두 번 그런 얘기를 들었다. 한 번이 이때고, 다른 한 번은 디제이가 김중권씨(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선 첫 비서실장을 지냈다)를 민주당 대표로 지명했을 때(2000년 12월)였다. 노무현 장관이 ‘기회주의자는 포섭 대상이긴 해도 지도자로 모실 수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래서 내가 ‘노 장관에게 한번 얘기하겠습니다’라고 하자, 디제이는 ‘하지 마. 그 사람이라도 그런 얘기를 해야지. 그래야 김중권 대표도 민주당 가서 많이 조심할 거 아니야?’ 그러시더라”라고 말했다.

이걸 보면 디제이는 막강한 영향력의 보수 언론과 싸우는 노무현에게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싶다. 노무현처럼 거대 언론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정치를 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언론사의 탈법을 눈감아주진 않았음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을까. 김 대통령은 2009년 강상중 도쿄대 교수와 가진 대담집(‘반걸음만 앞서가라’)에서 “대통령으로 있을 때 어떤 신문사의 탈세 문제를 다루는 어려운 국면에 맞닥뜨린 적이 있다.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보복이 예상됐고 좀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타협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 정권은 미디어에 굴복하고 말려들었지만, 나는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단호하게 싸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디제이는 ‘법에 따른 탈세 조사’라는 명분을 거듭 되뇌며 엄청난 중압감을 헤쳐나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무현 당선자에게 건넨 국정 메모에 국내 현안으론 유일하게 언론사 세무조사가 담겨 있는 이유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것이 김대중 정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보긴 어렵다. 조·중·동의 비판은 훨씬 격해졌다. 보수 신문들은 김대중 정부와 이념적 대립각을 뚜렷하게 세움으로써 신뢰의 추락 속에서 활로를 찾았다. 김 대통령은 국정노트에 ‘세무사찰 이후 더 한층 비판의 소리 커져’라고 적었는데, 원문엔 ‘비판의 자유’로 썼다가 ‘자유’를 지우고 ‘소리’로 고친 흔적이 남아 있다.

분명한 건, 치외법권이던 언론이 비판과 감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없었다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조선일보와 정면 대결하면서 승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세무조사가 ‘언론 장악을 위한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조선일보는 세무조사 1년 뒤인 2002년 2월9일치 사설에서 “언론사 세무사찰은 치밀한 기획과 짜여진 각본에 의해 자행된 탄압공작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랬을까.

신년 기자회견을 며칠 앞둔 2001년 1월7일께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급한 호출을 받았다. ‘빨리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내용이었다. <계속>

박찬수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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