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 vs 경제정의 : 당신은 재벌 승계 찬성하십니까?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6. 5. 13: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마켓톡톡
尹 정부와 재벌 2편 찬반론
贊 총수 지분은 개인 재산권
贊 낙수효과의 부산물 후생효과
反 쥐꼬리 지분으로 경영권 확보
反 재벌에서 파생한 한국경제의 덫

우리는 '尹 정부와 재벌 1편: 승계 과정'에서 첫번째 화살로 법인 총수(동일인)의 허용, 두번째 화살로 경영권(지배지분) 상속세 완화, 세번째 화살로 대기업 산하 공익법인 지분으로 총수 의결권 확대를 꼽았다. 세개의 승계 화살은 재벌 일가의 이사회 의결권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확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재벌 총수의 승계가 적절하느냐다. '尹 정부와 재벌 2편 : 재벌 승계 찬반론'에서 답을 찾아봤다.

재벌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견은 찬반양론으로 엇갈려 있다. [사진=뉴시스]

■ 승계 찬반론=재벌 총수 일가의 승계 문제에도 찬반론이 있다. 설문조사 결과는 승계에 부정적 의견이 많지만, 압도적이진 않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전문가집단에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재벌 승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자가 56.0%, '바람직하다' '보통이다'는 응답자는 각각 14.0%, 30.0%였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의 2020년 조사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응답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찬성론의 밑바닥에는 지분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은 지배지분을 상속하는데 멈추지 않고, 이를 활용해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다만,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기업의 경영뿐만 아니라 산하 상장회사의 경영진을 임명하고, 업무를 지시(업무지시자)하려면 따져야 할 것들이 많다. 총수 개인의 재산보다 타인의 재산이 더 많아서다.

찬성론의 또다른 믿음은 낙수효과다. 재벌 가문이 경영권을 저비용으로 승계하면, 기업이 더 많이 투자하고, 그러면 사회 전반에 후생이 증가한다는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비싼, 좋은 집을 갖고 있다고 거기에 과세를 하면 그런 집을 안 만들게 된다"며 "그 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이 일자리를 얻고 후생이 발생한다"고 낙수효과를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감세 등으로 인한 낙수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문이 최근까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승계 반대론은 경제집중도 해결과 경제정의의 실현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헌법 제119조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해야 하고, 국가가 균형있는 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재벌이 대기업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가 미국에서는 불법이라는 점, 그래서 미국은 경쟁을 해치는 기업을 꾸준히 해체했다는 것도 반대론의 근거다. 지주회사는 여러 사업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의결권을 보유한다.

미국에서 독점으로 해체될 위기에 처한 스탠더드오일이 이를 피하려고 만든 게 지주회사다. 미국 대법원은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을 30여개 회사로 해체했다. 이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독점 여부와도 상관 없이 시장 경쟁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FTC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분할을 위해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 성장의 이상한 과실=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최상위 1개 재벌(기업집단)의 상장사 주식가치는 전체 증시 시가총액의 38.45%를 차지한다. 상위 2개로 늘리면 51.19%다. 2개 재벌이 한국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4일 기준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상위 3개 그룹 시가총액은 전체 증시의 60.47%, 4개 그룹은 69.40%를 차지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기업 밸류업을 위한 세제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계 10위 안팎인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전체 가치의 70%를 4개의 가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4년 발표한 우리나라 88개 대기업집단 총수의 평균 지분율은 1.94%, 총수 친족의 평균 지분율은 1.56%다.

이 정도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려면 재벌 일가는 나머지 의결권을 어떻게 확충하는 걸까. 1편에서 지적한 대로 총수 일가는 지분을 추가 확보해 의결권을 확보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의결권을 소멸시키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배력을 높였다.

우리나라 88개 대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은 평균 60.03%에 달한다. 쉽게 설명하면 총수 일가가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도, 회사가 60.0% 지분을 사들이면 일가의 의결권은 100분의 3이 아닌 40분의 3으로 올라간다.

법이 느리다는 맹점도 존재한다. 재벌 일가가 전환사채, 개인회사, 일감 몰아주기, 자사주 활용 등을 승계의 무기로 사용할 때마다 법을 신설하긴 했지만, 너무 늦었다.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이 시작한지 10년 이상이 지나서야 법으로 금지했다.

자사주 활용 등도 마찬가지다. 법이 늦게 만들어지면 해당 승계 수단은 이미 막대한 부를 만들어낸다. 법은 과거의 승계 방법을 소환해서 원상 복귀시키지 않고, 오히려 후발주자들의 진입을 막아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할수록 재벌 승계에 들어가는 경제·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시장집중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나라 중에서 6번째로 높다. 시장집중도는 시장점유율 상위 4개 기업에 집중된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높을수록 경쟁이 어려운 시장이라는 의미다.

더스쿠프가 세계은행이 집계하는 국가별 시장집중도(HHI)를 OECD 국가들 내에서 비교해 보니 우리와 같은 수준(0.12)의 시장집중도를 기록한 나라는 아이슬란드와 코스타리카였다. 일본(0.11), 미국(0.06), 영국과 프랑스(0.05), 이탈리아(0.04) 모두 우리보다 시장집중도가 낮았다(2021년 기준).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생산성 약화, 신규 사업 부재도 궁극적으로는 재벌 가문이 지배하는 기업들이 주요 산업을 평정해서 생긴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4월 '한국 경제의 기적은 끝났나?'라는 기사에서 재벌 주도 경제성장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주요 재벌의 총수가 3세로 넘어가면서 성장이 아닌 현실에 안주하고 있고, 그게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은 이유다.

■ 밸류업 대척점=한국경영자총협회가 3일 개최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세제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는 "기업 상속인의 상속세율을 10%포인트 낮추자"는 주장이 나왔다. 발제자는 "(최대주주의) 상속세 부담으로 투자가 보류되고, 고용이 불안해지며, 지배구조도 불안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은 결국 지금까지 대다수 대기업집단이 총수 일가의 승계를 위해서 직·간접적으로 필요 이상의 많은 비용을 들였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해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이름을 바꿔 재출범했다.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앞에 설치된 한국경제인협회 표지석. [사진=뉴시스]

재벌 승계 문제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진의로도 이어진다. 우리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강제력이 없고, 지배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인 쪼개기 상장도 마찬가지다. 지주회사와 산하 여러 사업회사가 동시에 상장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재벌 대기업의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서 승부처는 상속세다. 정부는 최고 세율 50%에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최고 20%를 할증하는 현행 상속세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재벌의 승계가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적은 지분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다. 승계의 비용 중 가장 많이 드는 게 상속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속시 경영권 프리미엄에 붙는 할증 세율이 실제 거래되는 경영권 프리미엄보다 낮다.

2019년 현재 우리 경영권 프리미엄(거래가격과 거래공시 전 시장가격 차이)은 40.0~68.0%로 미국의 34.7~39.7%, 독일의 30.2~36.9%, 싱가포르의 20.0~29.2%보다 현저히 낮다(경제개혁연대 2019년 조사). 우리나라는 최대주주의 지분만 확보하면 손쉽게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사회가 주주 충실 의무를 다하고 있는 미국·독일·싱가포르에선 전체 지분의 50%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천준범 와이즈포르세트 대표변호사는 2020년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경영권 프리미엄은) 정확히는 비경영권 디스카운트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며 "회사가 배당을 충분히 하지 않는 등 다른 이유로 할인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