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동해 유전, 화려한 말잔치보다 진정한 설득이 필요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6. 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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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6월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석유·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심해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통해 직접 밝힌 소식이다. 정부가 작년에 실시한 '물리탐사'를 통해서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명하게 확인했다는 것이다.

여러 전문가의 '교차 검증'도 거쳤다고 한다. 연말에 시작하는 노르웨이 시드릴사의 시추를 위해 5000억 원을 투입하면 내년 상반기에는 어느 정도 윤곽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산유국의 꿈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달라는 것이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였다.

● '최소 35억 배럴'에도 주목해야

에너지의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석유·천연가스가 펑펑 쏟아지는 '산유국의 꿈'은 언제나 달콤한 것일 수밖에 없다. 암울했던 1960년대부터 석유 탐사를 시작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대부분이 중생대 이전에 형성된 오래된 변성암·화산암으로 이뤄진 우리 땅의 지질구조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포항·울산 지역의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비교적 젊은 지층에서는 석유·천연가스 관련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실망스러운 소문으로 확인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2004년부터 17년 동안 울산 앞바다의 '동해 1·2' 가스전에서 4500만 배럴의 천연가스를 생산하기도 했다. 2021년 폐쇄할 때까지 2조6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생산에 1조2000억 원의 비용을 써야만 했다. 물론 적지 않은 이익을 챙기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는 포항 영일만 38km에서 100km 범위의 심해 최대 2km 지점에서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천연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석유공사가 2022년에 구성한 '광개토팀'이 이룩한 성과다.

1년 동안 지진파(탄성파)와 슈퍼컴퓨터 등을 활용해서 수집한 자료를 미국의 액트지오(Act-Geo)사가 작년 2월부터 10개월 동안 분석했다는 것이 산업부의 설명이다. 석유공사가 지난 17년 동안 축적한 동해 심해 탐사 자료를 액트지오사에 보내서 심층분석을 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물리탐사의 결과를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이번 시추의 성공 가능성을 20%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패할 가능성이 성공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번 시추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산업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원 탐사에서 실패는 흔한 일이다. 현재 엄청난 양의 석유를 퍼내고 있는 북해 유전의 경우에도 시추 성공률은 3%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석유기업인 엑손이 1966년부터 시도했던 30여 차례의 시추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필립스사가 6번의 시추에서 실패한 후에야 어렵사리 성공할 수 있었다. 1998년에 시작했던 동해 천연가스전의 경우에도 11번의 시추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에너지 자원의 확보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푸라기'라도 애써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원 개발 사업이다. '차분하게 기다려달라'는 대통령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무작정 정부를 믿고 기다려달라는 요구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는 뜻이다. 

● 정부부터 '차분하게' 대응해야

실패를 너그럽게 용인(容認)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목표가 얼마나 도전적이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목표에 도전하는 과정이 얼마나 성실하고 투명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성공률이 매우 낮은 자원 개발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거품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라는 뜻이다.

정부가 밝힌 물리탐사의 결과는 분명하다. 예상되는 자원의 총량은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이다. 천연가스가 27억 배럴에서 98억 배럴이고 석유가 8억에서 42억 배럴이다. 예상 매장량의 불확실성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총량은 4배나 차이가 나고 석유는 5배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산업부와 언론은 오로지 예상 '최대' 매장량에만 매달리고 있다.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로 석유는 우리가 '4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고 천연가스는 '29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야단법석이다.

매장량 기준으로 우리가 카타르(252억 배럴)에 이어 '세계 15위'의 산유국이 되고 석유만으로는 '세계 11위'가 된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동해 가스전의 78배에서 311배라고 분명하게 밝혔어야 한다. 겉으로만 화려한 잔치를 위한 억지와 과장은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

산업부가 매장량이 110억 배럴로 알려진 남미 가아이나 광구를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으로 소개한 것도 없고 부끄러운 궤변이다. 우리가 현재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는 낯선 가이아나 광구를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도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금세기 최대'라는 표현도 작위적이다. 21세기를 뜻하는 '금세기'가 시작된 것은 고작 24년 전이었다. 

산업부 장관은 동해 유전에서 예상되는 석유·천연가스의 가치가 1조4000억 달러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이른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동해 유전의 자원을 배럴당 100달러로 평가한 것이다.

현재 고공행진 중인 두바이유의 가격은 배럴당 80달러라는 사실도 무시했고 천연가스와 석유의 가격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외면해 버렸다. 산업부 장관의 평가는 지나치게 부풀린 것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동해 석유·천연가스 자원의 가치는 산업부 장관이 평가한 것의 10분의 1까지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밝힌 물리탐사 결과의 '최소' 예상치를 고려하면 그렇다.

정부가 밝힌 물리탐사의 내용도 도무지 개운치 않다. 물리탐사를 수행했다는 액트지오사의 정체부터 석연치 않다. 액트지오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심해 평가 전문기관'이라는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옹색한 주장에 대한 볼썽사나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액트지오사는 과거 글로벌 석유기업에서 자원 탐사 업무를 담당했던 전문가가 2017년에 창업한 1인 컨설팅 기업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 언론과 국민이 낯선 전문가의 역량을 평가하도록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액트지오의 인사가 서울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도배하도록 만든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의 정책이 낯선 전문가의 현란한 언론 플레이로 결정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산업부가 그동안 우리나라 자원 탐사를 전담하고 있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배제한 이유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에너지 개발 기업이 이번 개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히고 있다"는 산업부의 일방적인 주장도 시대착오적이고 낯 뜨거운 억지다.

자원 개발과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명운이 걸려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런 일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모든 일에 직접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부가 시추 계획을 실무적으로 발표하고 대통령이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산업부가 국민을 차분하게 설득하는 전문성과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줘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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