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21% 대통령 앞의 불길한 먹구름[이철호의 시론]

2024. 6. 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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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축하주에 집단 침묵 여당 의원들
민심 의식 술 금지한 용산 기자단
尹 대통령 센터 본능 자제할 필요
가계 대출 급증, 전셋값 급등 비상
집값 오르면 지지율 20%도 위험
금융 당국 수수방관도 불길할 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오늘 제가 욕 좀 먹겠다. 맥주 축하주 한 잔씩 다 드리겠다”고 했는데, 진짜 욕을 제대로 먹은 셈이 되고 말았다. 하필 12사단에서 가혹행위로 숨진 훈련병의 영결식과 겹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조차 “진정한 보수라면 이럴 수 있나”라고 쏘아붙일 정도다. 갤럽 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인 21%까지 빠졌다. 부정 평가는 70%로 치솟았다.

대조적인 장면이 지난달 24일 윤 대통령 초청 출입기자단 만찬이었다. 청사 잔디 마당에서 대통령이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고기를 굽고 계란말이를 만들어 기자 200여 명에게 대접했다. 유난히 대통령실이 “주류는 제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기자들이야 술을 마시며 대통령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4월 말 여야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언론을 장악할 방법은 잘 알고 있으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 게 발목을 잡았다. 자칫 술잔이 돌면 ‘소통 강화’보다 ‘언론 관리’의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는 경계심이 기자단 내부에서 작동했다. 차가운 외부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이에 비해 연찬회를 마친 여당 중진 의원들이 오후 9∼10시 기자들이 식사하던 인근 식당에 들렀다. 이미 취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맥주 한 잔을 넘어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다는 방증이다. 2년 전 권성동 의원처럼 술병 들고 노래하는 대형 사고를 안 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무엇보다 불길한 대목은 “108석도 굉장히 큰 숫자”라는 의원들의 집단 침묵이다. 누구 하나 “오늘은 반성의 의미로 술을 마시지 말자”고 하지 않았다. 영남권 의원들은 줄서기 달인이라고 쳐도 수도권의 안철수·나경원 같은 중진, 용감해 보이던 김재섭·김용태 같은 초선까지 입을 닫은 건 실망스럽다. “용산에 할 말 하겠다”던 다짐도 우습게 됐다. 정치 감각이 정치부 기자들보다 한참 아래다.

윤 대통령이 3일 직접 “포항 앞바다에 140억 배럴의 막대한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깜짝 발표한 것도 곱씹어 볼 대목이 적지 않다. 배석한 산업부 장관은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라며 펌프질을 했지만, 온라인 반응은 딴판이었다. “지지율 올리려 별짓 다 한다” “부산엑스포도 이긴다고 해놓고 참패했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도 그랬다”는 부정적 댓글이 넘쳐났다. 천공의 산유국 예고 동영상까지 나돌았다.

오히려 산업부 장관이 발표하고 윤 대통령이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했으면 더 좋은 그림이 될 뻔했다.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회의실 구석에서 웅크려 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말이다. 윤 대통령이 ‘센터 본능’을 억눌러야 가능한 그림이다. 항상 생색낼 때는 대통령을 앞세우고, 정작 책임져야 할 상황에선 발을 빼는 모양새도 민망하다. 총리실이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은 중국 직구 금지가 상징적 사례다. 대통령실은 “우리는 몰랐다”며 선부터 그었다. 대통령 책임제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세심하게 다시 살펴보겠다”는 게 정상 반응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급반등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친윤·친한(친한동훈)의 감정적 골이 깊어져 보수 진영은 두 쪽 나버렸다. 친윤은 이재명·조국 대표의 유죄 판결을 기다리며 반사이익에 목을 매는 분위기다. 하지만 먹구름부터 밀려오는 조짐이다. 4월 총선 참패의 3종 세트가 이종섭 도피·황상무 회칼·대파 사태였다면, 지금 다가오는 핵폭탄은 부동산이다.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 사태에 이어 올 들어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대출에다 초저금리의 신생아특례대출까지, 또 정책 대출이 급증했다. 5월 주택담보대출만 4조5000억 원 늘어났다. 7월 주택임대차법 시행 4년을 앞두고 전셋값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10여 년간 가계부채와 부동산 급등의 원흉으로 전세자금대출을 지목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리면 끝이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은 특검법 막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고, 개각을 앞둔 경제·금융 수장들은 제대 말년 병장처럼 손 놓고 있다. 다가오는 여름이 불길하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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