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수컷은 안 돼” 붉은점모시나비의 ‘이기적 짝짓기’
망종(芒種), 식물은 열매 맺고 곤충은 알을 낳는 초여름
나무들이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맺는 바람에 꽃이 귀해지는 초여름. 진한 초록으로 변해가는 숲에 뒤늦게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와 백당나무는 요즘이 제철이다. 바람개비처럼 생긴 하얀 꽃받침에 꽃이 둘러싸여 있는 산딸나무나 접시에 올려진 음식처럼 넓은 꽃받침에 꽃들이 소중히 담겨있는 백당나무는 알고 보면 허세를 부리는 꽃이다.
달콤하지도 않고, 조그맣고 볼품없는 꽃으로는 곤충을 유혹하지 못하므로 여러 장의 꽃받침을 붙여 풍성한 꽃으로 위장한다. 넓은 꽃받침은 벌과 나비에게는 착륙하기 좋게 만들어 놓은 활주로와 같다. 꽃받침에 유혹됐다가 저절로 안쪽의 암술, 수술을 건드려 수분을 시킨다. 과장된 헛꽃으로 많은 곤충을 유인하는 산딸나무와 백당나무의 생존 전략이 경이롭다.
고개를 빳빳이 곧추세운 새빨간 지느러미엉겅퀴에 붉은점모시나비가 꿀을 빨고 있다. 멋진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서는데 꿀 먹기에 정신이 없는 붉은점모시나비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지느러미엉겅퀴는 마을 뒷산이나 집 근처 풀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꽃이었지만, 이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여름꽃이 되어버렸다. 고작 일주일 내외로 사는 붉은점모시나비에게 많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식물인데 점점 귀해져 꿀 빨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5일)은 망종(芒種). 여름의 들머리에 섰다. 절기 자체도 낯설지만, 특히 망종은 이름도 촌스럽고 어째 어감이 좋지 않다. 그러나 농사에 관한 단어로 망종만큼 정확한 정보를 주는 절기는 없다. 망(芒)은 낟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 같은 까끄라기를 가리키며 종(種)은 ‘종류’라는 명사로 쓰이거나 ‘심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사용된다. 그러니까 망종은 까끄라기를 갖고 있는 곡식의 종자를 심기에 적절한 때를 말한다. 벼 모내기에 가장 적당하다는 뜻이다.
24절기는 태양의 황도(지구에서 볼 때 태양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경로)에 따른 계절적 구분을 만든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농업의 역사이고, 자연사로 보자면 다른 생물들과의 교감을 함축하는 생태의 역사다. 디지털 시대에 농업용 데이터를 사용하는 일이 억지 같지만, 자연의 흐름을 파해 삶을 챙기는 ‘절기살이’는 지구와 인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시의적절한 시도가 될 수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과정, 가뭄과 홍수도 때가 있다. 생물들의 대발생과 멸종도 기후와 궤를 같이하니 자연의 리듬이나 계절을 실감할 수 있는 절기살이는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도구가 될 것이다.
기상 현상 앞에 ‘최악의’ ‘이례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상기후의 시대다. 생물이 죽어 나가고 사람 목숨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이렇게 물리적·화학적으로 세상을 뒤바꾼 인간의 생활 방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이나 단기간에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기후변화는 기후재앙을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기존의 철학과 과학, 생활 방식으로는 지구 열대화로 상징되는 기후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6개월에 걸친 호주의 대형 산불과 전 국토의 3분의 1을 삼킨 파키스탄 홍수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남의 일이었겠지만, 지난해 겨울 긴 한파로 비롯된 과일값 폭등과 전기세, 난방비 폭탄은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기후위기’를 체감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난방비 걱정은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 것인가. 과일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기후위기의 암울한 고지서’를 받아든 셈이다.
올해도 아직 6월 초인데 벌써 한낮의 열기에 숨이 막힌다. 홀로세생태연구소 앞쪽에서 섬강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사람들은 땀을 식힐 수 있어 다행이지만 멸종위기 곤충은 이야기가 다르다. 붉은점모시나비는 영하 48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저온에 적응한 녀석들이라 태생적으로 더위를 견딜 수 없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이 곤혹스럽다. 기후변화로 가장 먼저 멸종될 곤충 가운데 하나다. 걱정이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며 멸종위기 1급인 붉은점모시나비는 6월 중순 경 알을 낳고, 약 190일간 알 속에서 1령 애벌레로 여름잠을 자다가 11월 말~12월 초에 부화해 발육을 시작한다. 이런 붉은점모시나비의 생활사를 필자가 처음 밝혀낸 것이 2012년이다. 봄에 알에서 부화해 애벌레가 나온다는 통설을 완전히 뒤엎는 생태를 확인한 의미 있는 연구였다. 이후부터는 성공적인 증식을 진행하고 있다.
번식 방법도 독특하다. 붉은점모시나비 수컷은 짝짓기 과정에서 암컷에게 ‘스프라기스’(Sphragis)라는 일종이 생식기 마개를 만들어 다른 수컷이 접근할 통로를 아예 차단한다. 수컷은 짝짓기와 동시에 정자를 거품처럼 부풀려 한 방울씩 암컷의 배에 갖다 대 길쭉하고 칼 같은 모양의 덩어리를 만든다. 이것이 완성되면 삼각형 모양의 마개가 되는데, 다른 수컷과의 짝짓기를 막는 역할을 한다.
손대면 툭 하고 떨어질 것 같은데 실제 만져 보면 단단하게 붙어있어 떼어내기가 힘들다. 매우 효과적인 ‘특수 장비’로 자신의 유전자만 전달하려는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진화적 측면으로 보자면, 유전적 다양성을 막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특한 생활사와 생리를 확인하고 ‘붉은점모시나비에게 무언가 특별한 물질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2012년부터 집중적으로 심층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2017년 붉은점모시나비의 유전체를 분석해 극한의 추위에서도 살아남도록 돕는 ‘내동결 물질’(세포를 얼지 않게 하 물질)을 밝혀냈다. 붉은점모시나비는 알 상태로는 영하 47.2도까지, 애벌레로는 영하 35도까지 살 수 있다. 2021년도에는 치주염을 억제하는 항균물질을 발견했으며 지난해에는 아토피 피부염에 치료 효능을 보이는 펩타이드(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의 최소 단위)를 확인해 신약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붉은점모시나비 연구로 4편의 논문을 출간하고 특허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곤충인지 모른다.
절멸 수준까지 내몰렸던 붉은점모시나비를 살려낼 수 없었다면 멸종위기종 나비 보존도 못 하고 유용한 물질도 얻지 못했을 테니 참으로 아쉬웠을 것이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의 내한성을 생각하면 동상 치료제, 수족냉증, 혈액순환 장애와 코로나바이러스의 백신 등 백신과 치료제로의 개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인력과 연구비의 한계가 안타깝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멸종위기종 보전을 알리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홀로세생태연구소에서는 ‘멸종위기종 보전 20년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금개구리 등 5종의 멸종위기종의 생활사와 복원 과정을 소개한다. 고비마다 잘 넘겨 어느덧 20년이 됐다. 생태적 약자인 멸종위기종 생리나 생태를 연구하다 보니 증식에 성공하게 됐고, 이제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개하게 된 것이다. 방문했던 많은 분이 잊혔던 멸종위기종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응원을 해 주셨다. 이런 응원만 있다면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본다. 작은 일도 지극해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고, 20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안을 얻었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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