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냉전의 흔적을 기록하다 [인터뷰]

조혜정 기자 2024. 6. 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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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스트 박종우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11년간 사진기자로 일한 박종우 작가는 우연히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이곳이 평생 작업의 바탕으로 삼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티베트의 차마고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비무장지대(DMZ)를 촬영한 그의 이력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자신이 주체가 돼 기록하는 행운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평생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의 다음 기록은 무엇이 될까.

다큐멘터리스트 박종우. 홍기웅기자

민간인 최초로 DMZ를 담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지난해 7월 경기도박물관과 독일에서 박종우 작가의 DMZ 사진이 전시됐다. 분단이 만들어낸 현실과 미래를 담았다는 점에서 두 전시는 큰 의미를 가졌다. 독일 전시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으며 이미 몇 년 전 독일 사진집 전문출판사 슈타이들을 통해 DMZ 사진집이 출판된 바 있다. 여전히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있는 남한과 북한 사이엔 휴전선을 기준으로 서해에서 동해까지 38도선을 따라 248㎞에 걸쳐 폭 4㎞의 DMZ가 설정돼 있다.

박종우 작가는 이 냉전의 흔적을 민간인 최초로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2009년 국방부 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과 조선일보가 협약을 맺은 사업에 박 작가가 합류하면서 DMZ 촬영은 가속화됐다.

“오랜 세월 인간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고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 있어 날이 서 있을 것 같지만 막상 DMZ에 들어가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나라의 산과 들, 자연 그 자체였지요. 드문드문 부대와 초소가 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2009년 10월 촬영 제안을 받아 답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그해 12월부터 DMZ를 찍기 시작한 박종우 작가는 DMZ 작업 중 GP(Guard Post·최전방 감시초소)를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GP 개수 자체는 군사기밀인데 2009~2010년 당시엔 80~90개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어요. 국방부의 특별 허가에 따라 그곳을 다 찍을 예정이었고 물론 촬영 후 국방부 확인을 받기로 돼 있었죠. 2009년 12월부터 석 달 동안 GP 10개 정도를 방문했는데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GP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가을까지 6개월여 DMZ 철책 밖을 찍으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좀 누그러져 국방부에서 GP에 대한 재허가가 났는데 다시 GP에 들어가기로 한 사흘 전인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09년 10월부터 준비한 DMZ 촬영은 그렇게 끝났다. 작업을 아예 못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 작업도 포기하고 매달린 프로젝트 치곤 미진한 1년이었다. 군 헬기를 타고 DMZ를 왕복하며 사계절을 담기로 한 계획도 가을 촬영 한 번으로 만족해야 했다.

박종우 작가는 2009년 DMZ 기록 작업에 참여해 민간인 최초로 DMZ를 촬영했다. 박종우 제공

전쟁의 흔적과 삶의 흔적

박종우 작가가 기록하는 전쟁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땅에서는 보이지 않던, DMZ 상공에서 발견한 어떤 구조물을 최근까지 사진으로 담고 있다.

“군 헬기에서 DMZ 풍경을 담을 때 처음 보는 구조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군인들에게 물어보니 ‘대전차 장애물’이라고 하더군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탱크로 서울까지 밀고 들어왔죠. 우리 군은 탱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밖에 없고, 탱크를 막는 것이 국방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서울 북부에 있는 웬만한 국도와 하천변, 해안에 탱크 저지선인 용치 등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해 놨습니다.”

탱크를 막기 위해 설치한 대전차 장애물. 박종우 제공

세월이 흘러 전쟁의 모습도 바뀌었고 대전차 장애물도 무용지물이 됐다. 도로 건설 때마다 걸림돌이 되고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기도 하는 대전차 장애물은 우리 시대 흉물 취급을 받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없애고 싶고, 군에서는 쉽사리 없애지 못하는 현실인 거죠. 최근 독일에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이런 전쟁의 흔적은 독일을 비롯한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등 전쟁을 겪었거나 위협이 있던 유럽 대부분 나라에 산재합니다. 나라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형태고 다른데 영국은 탱크를 막겠다고 몇천 ㎞에 달하는 해안선에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했어요. 지금 보면 어리석은 생각이기도 하지만 전쟁과 침략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가 회사를 나와 다큐멘터리스트로 전환한 후 세계 오지를 탐사하며 사진과 영상을 남기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서울, 부산 등 국내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기록하며 지금은 지나치는 것들을 훗날의 사람들에게 남기고자 한다.

“중학교 때 처음 사진을 배웠는데 그땐 처음이니까 창경궁도 찍고 석조전도 찍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당시 우리 집이 서대문 근처였는데 집 앞에 서울의 마지막 대장간이 있었어요. 기둥에 말과 소를 묶어두고 말굽을 갈거나 박는 작업을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었는데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않은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땐 너무 익숙했고 그런 일상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훗날 후회하지 않게,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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