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단체 “남풍 불면 언제든”…접경지 주민들은 ‘불안’

2024. 6. 5. 11: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 오물 풍선 맞대응”…민간단체 ‘대북 전단’ 지속 방침
접경지역 주민들 “대북 전단 살포, 군사적 위기 고조시켜”
경찰, ‘대북 전단’ 정부 방침 및 헌재 기준 따라 대응 방침
지난 2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도로에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이 떨어져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용경·박지영·이민경 기자] 최근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연달아 살포한 데 대해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 살포로 맞대응을 예고했다. 정부가 이 같은 대북 전단 살포 계획에 특별히 제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오물 풍선 사태 이후로 이어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등 일련의 조치에 접경지 주민의 우려는 확대되고 있다.

▶北오물 풍선에 맞대응…민간단체 “대북 전단 살포 지속”

북한에 풍선을 날려 전단지를 뿌려오던 민간 단체가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어서 접경 지대 군사적 긴장 상태에 대한 우려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4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전제하면서도 기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바람 방향에 따라 대략 5~6일께 대북 전단 등을 보낼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박상학 대표[자유북한운동연합]

박 대표는 지난 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남풍이 불면 즉각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오물 쓰레기를 뒤집어 쓴 데 대해 김정은이 직접 정중히 사과하면 우리도 전단 살포의 잠정 중단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우리는 사실과 진실, 사랑과 약과 1불 지폐, 드라마와 트로트를 보냈는데 여기에 오물과 쓰레기를 보낸단 말인가”라며 “전대미문의 악행을 저지른 김정은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즉각 사과하라”고 규탄했다.

앞서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10일 대북 전단 30만장과 K팝·드라마·가수 임영웅 트로트 동영상 등을 저장한 USB 2000개를 대형 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에 날려 보내는 등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접경 지대 군사적 긴장 상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 도발 행위에 대응해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로 4일 오후 3시부터 합의의 효력이 사라지며 대북 확성기 방송과 함께 그동안 제한됐던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군사훈련도 재개될 전망이다.

▶“눈 앞 北오물 풍선 비현실적”…접경지역 긴장 확대에 주민들 ‘우려’

전국에 북한의 오물 풍선이 살포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대체로 ‘비현실적 상황이 발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풍선을 활용한 생화학 무기 살포 가능성을 우려하며 안보 위기를 지적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오물 풍선을 목격한 시민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인천시 남동구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지난 1일 밤 10시 30분께 초등학교 하늘 위로 하얀 풍선 떠다니다가 점점 내려오더니 초등학교 운동장에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산다는 또 다른 시민은 “풍선이 터진 이후 도로와 인도에 쓰레기들이 쫙 퍼졌는데, 담배 꽁초와 종이 찢은 것 등 쓰레기들이 많이 나왔다”며 “현장에서 군인들이 담배 꽁초가 북한제라고 통화하는 것 들었는데, 담배 냄새가 엄청 났다”고 했다.

[연합]

경기도 일산시에 거주하는 최모 씨(42)는 3일 전 집 앞에 떨어진 북한의 오물 풍선을 직접 목격했다. 최씨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미디어에서 접했을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며 “우선 풍선이 정말 커서 놀랐고, 이렇게나 쉽게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고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오물을 달고 왔지만, 언젠가는 위험한 물질을 달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나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애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접근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북한의 오물 풍선에 맞대응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계획에 대해선 “큰 의미가 있는 일인가 싶다”며 “접경지 인근의 주민들도 걱정되고, 그냥 무시가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오물 풍선에 대응한 대북 전단 살포와 함께 군 당국이 9·19 합의 효력 정지에 따라 오는 20일부터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북도서에서 해상 실사격 훈련을 실시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군사적 긴장이 확대될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만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늘 겪는 일’이라며 평이한 분위기도 감지됐다.

평화와 연대를 위한 접경지역 주민·종교·시민사회 연석회의는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사적 충돌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적대 행동을 중단해 군사 충돌의 가능성을 없애고, 다시 대화와 평화의 문을 여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오물 살포는 대북 전단 대응 조처로 시작한 만큼, 이 상황을 해결할 해법은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심리전 확대가 아니라 대북 전단 살포를 단속해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접경지역 연석회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대북 전단살포 중단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접경지역인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는 주민 김민혁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파주 주민들은 큰 걱정을 안고 산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대남 풍선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탈북자 단체들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령도에 거주하는 A씨(49)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대북 전단 살포와 군사 훈련 방침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긴장이 고조되는 게 좋진 않다. 문재인 정부 당시 평화로울 때가 훨씬 좋았다”며 “긴장이 고조되면 사업적으로도 안 좋은데, 군인들이 비상이 걸려 밖으로 안 나오면 장사하는 데도 영향이 있고, 아무래도 외지 사람인 관광객들이 오는데 조금 두려워하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북한의 오물 풍선 대남 살포를 두고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검토하는 가운데 3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측 초소에서 북한군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

반면 대연평도에 거주하는 주민 B씨(50대)는 “늘 겪는 일이라서 걱정되진 않는다”며 “대남 오물 풍선 사태 이후에 아직까지 이상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연평도 주민 C씨(60대)도 “대북 전단은 위험성이 있을 수 있지만, 불만이 있지는 않다”며 “북한이 하는 행동에 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대북 확성기 방송도 해야한다. 우리가 뒤로 물러날수록 북한은 공세로 나오기 때문에 같이 강 대 강으로 나가야지 안 그러면 안보가 위축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알려진 군의 포 사격 훈련 방침에 대해서도 “현지 주민으로서 연평도에서 포 사격 훈련을 한다니까 오히려 안보가 튼튼해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하다”며 “연평도는 포격도 맞은 지역이라 일방적으로 당할게 아니라 철저히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 정부 기조 발맞춰 대북 전단 살포 행위 관리

경찰은 2023년 9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처벌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이른바 ‘대북 전단 금지법’ 조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가이드라인 삼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북한에서 남한을 상대로 한 총기 사격 등 현존하는 위협이 가해질 경우에 한해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등 유동적 상황 변경에 따라 종합적인 판단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지난 2일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조건부로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3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활동에 대해 자제 요청을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통일부 구병삼 대변인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두고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며 자제를 요청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헌재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관 7(위헌)대 2(합헌) 의견으로 대북 전단 등의 살포를 금지 및 처벌하는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을 위헌 결정했다. 당초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와 제25조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 등을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돼 있었는데, 이를 두고 헌재는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북한의 무력 도발 등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전단 살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헌재가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경고하고 필요한 경우 살포를 직접 제지하는 등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결정한 취지와 맞닿아 있다.

yklee@heraldcorp.com

g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